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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40년 박완서 문학인생’ 총괄하는 <친절한 복희씨>

등록 2007-10-20 11:54수정 2007-10-22 17:14

박완서 / 사진 김경호 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박완서 /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세월이 가면 모든것이 그립더라
전후시대 젊은날·중산층 속물근성·노년과 여성들의 삶…
‘문학인생 37년’간 다독여온 테마 9가지 이야기로 묶어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9500원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9500원
박완서씨의 노익장은 당당하고 아름답다. 1931년생이니 세는 나이로 올해 일흔일곱, 그러니까 희수(喜壽)에 해당한다. 등단은 꽤 늦어서, 마흔이던 1970년이었다. 그로부터 만 37년 동안 작가로서 그가 거둔 소출은 15권의 장편과 열 권의 소설집(중단편집)에 이른다. 산문집과 동화 같은 번외의 장르는 제하고서 헤아린 것이다. 이만하면 늦은 등단을 벌충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박완서씨는 1926년생인 박경리씨와 함께 현존 작가로는 최고령층을 형성한다. 그러나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여전한 현역 작가라는 사실이다. 박경리씨가 대하소설 〈토지〉를 마무리한 것은 1995년이었다. 몇 해 전 〈나비야 청산 가자〉라는 장편을 〈현대문학〉에 연재하다가 중단했으므로, 〈토지〉는 사실상 그의 마지막 작품인 셈이다. 박완서씨는 〈아주 오래된 농담〉(2000)과 〈그 남자네 집〉(2004) 두 권의 장편에 이어 새로 나온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까지 추가하며 한국 문학사에서 유례없이 풍요로운 칠십대를 구가하고 있다.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에는 아홉 개의 단편이 묶였다. 이 가운데 제목이 같은 장편의 모태가 된 〈그 남자네 집〉은 전후의 폐허에 청춘을 보낸 작가의 자화상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이 다루는 시기는 그의 등단작인 장편 〈나목〉과 〈엄마의 말뚝 2〉를 비롯한 중단편들, 그리고 90년대의 장편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포개진다. 전쟁이 초래한 파괴와 살상, 그럼에도 그 속에서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난 청춘의 시절들은 박완서 문학의 시원에 자리잡는다.

〈그 남자네 집〉에서 ‘나’와 ‘그 남자’의 사랑은 전쟁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배경으로 아슬아슬하게 피어오른다. 그것은 그들이 자주 들르곤 했던 포장마차의 카바이드와 연탄불처럼, 화려한 불꽃 아래에 싸한 독성을 품고 있는 소모적인 사랑이었다. 소설 속에서 그것은 ‘사치’라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 사치는 다시 ‘시’의 차원으로 승격된다.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72쪽)

사치로서의 시와 시로서의 사치가 현실 원칙과 양립하기란 불가능한 일. 두 사람의 사랑이 쓰라린 결별로 마무리된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반세기 가량을 건너뛰어, 그 아득한 시절을 되짚어 보는 노년의 시점(時/視點)이 소설을 열고 또 닫는다. 이제 하릴없는 늙마에 이른 주인공이 젊은이들의 거침없는 애무에 이물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무구한 청춘을 축복하는 결말이 쓸쓸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78쪽)

박완서 문학을 관통하는 테마 가운데 하나는 중산층의 속물근성에 대한 가차없는 해부와 신랄한 비판이다.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에 수록된 작품들 가운데서도 〈그리움을 위하여〉 〈마흔아홉 살〉 〈거저나 마찬가지〉 등은 이 범주로 묶을 수 있다. 〈마흔아홉 살〉의 주부들은 동아리 회장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해 그에 관한 험담을 한껏 늘어놓으며, 〈거저나 마찬가지〉의 위장취업자 출신 선배 언니는 노동자 출신 주인공에 대한 인정과 시혜를 표방하며 사실은 무시와 착취를 일삼는다. 〈거저나 마찬가지〉의 두 여성의 관계는 〈그리움을 위하여〉의 사촌 자매 사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어려운 처지의 동생을 돕는다고 생각하며 그를 사실상 파출부로 부려먹어 온 ‘나’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결말에 소설의 주제는 지나치리만치 ‘친절하게’ 제시되어 있다.

“나는 동생에게 항상 베푸는 입장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상전의식이지 동기간의 우애는 아니었다.(…)나는 상전의식을 포기한 대신 자매애를 찾았다.”(39~40쪽)

중산층의 속물근성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박완서 소설의 또 한 축을 이루는 것이 여성주의다. 이번 책의 표제작인 〈친절한 복희씨〉를 반드시 이 계열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폭력과 착취에 대한 저항은 여성주의로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욕, 식욕, 성욕이 남보다 강하고 그걸 표현하는 데 망설임도 수치심도 없었”(238쪽)던 남편에게 평생을 시달려 온 복희씨가 비록 상상 속에서나마 통쾌한 복수를 감행하는 결말은 여성주의적 독법을 향해 활짝 열려 있어 보인다.

9년 전에 내놓은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집중적으로 탐구되었던 노년의 풍경은 이 책에서도 지배적인 배경을 이룬다. 대부분의 소설 주인공들이 일흔 안팎의 노인들이며 그들의 물리적 삶과 심리적 정황이 소설의 작동 원리로 구실한다. 굳이 노인문제니 실버문학이니를 들먹일 것도 없이 노인들의 삶과 꿈은 이 노 작가의 자연스러운 관심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는 어언 구력 40년을 바라보는 박완서 문학의 핵심 요소들을 총괄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바탕을 이루는 정서는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제목에서부터 그리움을 내세운 〈그리움을 위하여〉는 물론, 〈그 남자네 집〉과 〈후남아, 밥 먹어라〉 〈대범한 식탁〉과 같은 작품들에서 그리움은 노년의 주인공들이 헤쳐 온 신산고초의 세월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는 약손의 구실을 한다. 그것이 특히 밥 짓는 냄새로 치환되는 대목이 인상적인데, 〈후남아, 밥 먹어라〉의 말미에서 주인공이 감탄하는바 “아아 이 냄새, 이 편안함, 몇 생을 찾아 헤맨 게 바로 이 냄새가 아니었던가 싶은 원초적인 냄새”(141쪽)야말로 작가 또래의 노인들에게는 그리움의 육화된 형태라 할 법하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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