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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설가 구보씨’를 무대에서 만나다

등록 2007-10-26 19:26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에 대해서는 평론가 김명화씨가 이미 지면을 통해 애정어린 비판을 내놓은 바 있다(5c<한겨레> 26일 치 24면). 이 자리에서는 실존했던 작가 박태원을 주인공 삼은 이 작품을 문학적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1933년 12월의 어느 하루, 소설가 구보씨가 경성 시내 곳곳을 다니며 소설 소재를 찾고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 극의 얼개다. 박태원의 <천변풍경>과 <성탄제> <윤초시의 상경> <반년간> 등이 구보가 구상하고 집필하는 소설로서 연극 속에서 되살아난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과 그가 쓰는 소설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소설로 치자면 ‘소설가 소설’이라 이를 법하다.

“그저 이 경성의 생활이 담긴 좋은 작품, 써 주시게.”

극중에서 구보의 절친한 벗으로 나오는 괴짜 시인 이상은 하루종일 구보와 경성 거리를 방황한 뒤 늦은 밤 헤어지기 직전 이렇게 당부한다. 연극 속에서 구보가 구상하고 집필하는 소설들은 말하자면 이상의 그런 주문에 응한 결과인 셈이다. 구보의 펜끝에서 빚어져 나온 소설들에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술집 여급으로 나가면서 몸까지 파는 자매가 있는가 하면 쏟아지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황금광 백만장자도 있고, 수줍은 편지로 풋풋한 연정을 전하는 청춘 남녀와 함께 동경 유학생과 일본 하숙집 딸의 ‘국경’을 넘는 사랑도 등장한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늙은이의 우왕좌왕과 좌충우돌을 그린 3장, 그리고 귀찮은 친구들과 ‘전도부인’, 감시꾼 조선인 형사 등을 피하며 도심의 산책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 4장에서는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을 잊고 객석에서 웃음보가 터지기도 한다. 조선어와 일어, 영어가 마구 뒤섞이는 언어의 풍경은 ‘잡탕 모더니즘’의 활력과 병증을 아울러 보여주는 듯하다.

시인 이상은 연극을 열고 닫는 구실을 한다. 그는 극의 들머리와 끝머리에서 구보의 창 아래에 와 “구보! 구보오!/ 구보 있나?/ 구보, 읎나?” 소리치는 목소리로 등장한다. 구보와 산책 중에는 특유의 코털 뽑는 ‘개인기’를 자주 선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조연의 자리에 머문다. 부각되는 것은 구보 박태원과 그의 소설들이다. 가령 맞선 자리에 나간 구보에게 상대방 여성은 그의 소설 <반년간>을 두고 이렇게 비판한다: “거기 나오는 여성들의 성격이란 하나같이, 어딘가 몰르게 조끔씩 리알한 감각을 결여하구 있었으니까요.(…)박 선생님의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에게서는… 그 뭐랄까, 같은 여자로서 맡아지는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반년간>에 대한 이런 평가는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성기웅씨의 순전한 ‘창작’이다. 구보와 이상이 농 반 진 반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서로의 작품을 가리켜 “알아듣지두 못헐 어린내 잠꼬대 겉은 시” “구질구질헌 조선 신파”라 비판하는 데에서도 이 국문학도 출신 연극인의 ‘내공’은 능히 짐작된다. 역시 식민 시대 경성을 배경 삼은 <조선형사 홍윤식>의 극본을 쓰기도 했던 그는 이번 작품에 대해 “내가 사는 이곳 서울이라는 도시의 연원을 더듬는 일”이자 “지난 세기에 살았던 한 선배 예술가의 초상을 더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선배 예술가의 차남인 박재영씨는 선친이 쓰던 석재 담배합을 소품으로 기꺼이 내놓아 연극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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