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하면 천벌을 받을지 모르지만 숭례문이 시의적절하게 잘 탔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몸뚱이를 불살라 비극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지요.”
정기용씨에게 숭례문 화재 이야기를 꺼냈더니 돌아온 답이 의외였다. 물론 참담한 심경을 비틀어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문화재는 보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기억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제가 모든 걸 살려낼 것처럼 울부짖고,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대운하로 국민과 입씨름을 하는 이 나라 비극의 실체를 바라보라고 남대문이 탄 겁니다. 문화재에 대해, 문화재를 넘어 문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에 대해 한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국민들에게 질문을 던진 겁니다.” 그는 문화재청 건축문화재위원이기도 하다. 흙 건축 연구 등 전통문화를 현대 건축에 끊임없이 살려가려는 그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석좌교수로 임용된 그는 건축가 조성룡, 김영섭씨와 함께 성균건축도시설계원에서 유학에 깃든 천인합일 사상과 차이의 존중을 도시건축과 연계해 우리나라를 도시건축이론의 발신기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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