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일락 향기〉
〈라일락 향기〉
김영현 지음/실천문학사·9800원 <내 마음의 망명정부>(1998) 이후 10년 만이다. 그 사이 두어 편의 장편을 내긴 했지만, 김영현씨의 방황과 모색은 길고 깊었다. 새로 나온 소설집 <라일락 향기>에는 지난 10년 그의 소설적 고투를 담은 단편 일곱이 묶였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발표된 <개구리>(1999)는 작가의 초기 단편 <그해 겨울로 날아간 종이비행기>에 곧바로 이어진다. <개구리>의 주인공인 ‘이공’은 앞선 작품에서 변혁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된 ‘인하’와 동일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중심은 해체되었고, 이데올로기는 종언을 고했으며, 사람들은 서둘러 반성문을 썼고, 그와 함께 우리들의 청춘도 흘러가고 말았다.” ‘이공’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은 그를, 그리고 작가 김영현을 괴롭히는 것의 정체를 요약한다. 돌이켜 보면 1990년을 전후한 무렵 문단을 달구었던 이른바 ‘김영현 논쟁’의 핵심은 80년대적 경직성에 대한 반성에 있었거니와, 그로부터 다시 10년을 지나게 되자 반성의 태풍은 김영현 자신마저 휩쓸어 버리게끔 되었다. 소설 자체에 관한 고민, 그리고 소설을 쓰기 위한 몸부림을 그린 수록작들은 그런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집 <라일락 향기>가 방황과 모색의 소산이라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표제작 <라일락 향기>의 기조가 안간힘의 희망을 향하고 있음은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거두고, 곧 헐릴지도 모르는 집의 정원에 라일락 나무를 심는 행위는 희망을 향한 의지를 표나게 드러낸다. 문제는 그것이 객관적 여건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주관적 관념의 차원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방황과 모색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김영현 지음/실천문학사·9800원 <내 마음의 망명정부>(1998) 이후 10년 만이다. 그 사이 두어 편의 장편을 내긴 했지만, 김영현씨의 방황과 모색은 길고 깊었다. 새로 나온 소설집 <라일락 향기>에는 지난 10년 그의 소설적 고투를 담은 단편 일곱이 묶였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발표된 <개구리>(1999)는 작가의 초기 단편 <그해 겨울로 날아간 종이비행기>에 곧바로 이어진다. <개구리>의 주인공인 ‘이공’은 앞선 작품에서 변혁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된 ‘인하’와 동일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중심은 해체되었고, 이데올로기는 종언을 고했으며, 사람들은 서둘러 반성문을 썼고, 그와 함께 우리들의 청춘도 흘러가고 말았다.” ‘이공’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은 그를, 그리고 작가 김영현을 괴롭히는 것의 정체를 요약한다. 돌이켜 보면 1990년을 전후한 무렵 문단을 달구었던 이른바 ‘김영현 논쟁’의 핵심은 80년대적 경직성에 대한 반성에 있었거니와, 그로부터 다시 10년을 지나게 되자 반성의 태풍은 김영현 자신마저 휩쓸어 버리게끔 되었다. 소설 자체에 관한 고민, 그리고 소설을 쓰기 위한 몸부림을 그린 수록작들은 그런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집 <라일락 향기>가 방황과 모색의 소산이라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표제작 <라일락 향기>의 기조가 안간힘의 희망을 향하고 있음은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거두고, 곧 헐릴지도 모르는 집의 정원에 라일락 나무를 심는 행위는 희망을 향한 의지를 표나게 드러낸다. 문제는 그것이 객관적 여건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주관적 관념의 차원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방황과 모색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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