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신의 어떤 오후〉
〈목신의 어떤 오후〉
정영문 지음/문학동네·1만원 정영문씨의 소설은 우리 문단에서 가장 뚜렷한 개성의 한 축을 형성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정영문 소설의 개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모호함과 지지부진함이다. 그는 윤곽이 흐릿한 인물들, 선후와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사건들을 주로 등장시킨다. 그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존재감이 희박하고, 세계는 단단하지 않고 물렁물렁하다. 정영문 소설은 연극으로 치자면 부조리극에 가깝다. 논리와 의미의 자리에 비논리와 무의미가 들어서면서, 견고하다고 생각해 왔던 대상과 가치를 무장해제시킨다. 단편 열 편이 묶인 새 소설집 <목신의 어떤 오후>에서도 정영문 소설의 이런 특징은 완고하다. 표제작에서 ‘나’와 ‘그’, ‘그녀’ 세 사람은 호숫가의 공터에 소풍을 나왔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둘러앉아서 긴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주변의 자연과 사물을 무심하게 관찰하는 것이 전부이다. 소풍 대신 여행하는 두 사람을 등장시킨 <여행의 즐거움>에서 빌려 오자면,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은 요점이 없었고, 그래서 어떤 요점에도 이르게 되지 않았다.”(54쪽) 다시 표제작으로 돌아오자면 그들은 “일생이 하루로 집약되는 것 같은 하루를, 무척 나른하고 몽롱하고 길게 느껴지는 일생 같은 하루를”(80쪽) 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브라운 부인>은 ‘권총 강도’ 소년과 소녀를 등장시키지만, 이 소설에서 강도와 그 피해자들은 그들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거듭 배신한다. 강도 커플이 원하는 것이라고는 약간의 음식과 노래 부르기일 뿐이고, 피해자인 브라운 부인은 그들에게 두려움은커녕 왠지 모를 친근감조차 느낀다. 실수로 총을 제 허벅지에 쏜 강도가 구급대와 함께 출동한 경찰에 순순히 잡혀가는 것으로 이 ‘이상한’ 이야기는 마감된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 어쩌지 말란 말이다. 최재봉 기자
정영문 지음/문학동네·1만원 정영문씨의 소설은 우리 문단에서 가장 뚜렷한 개성의 한 축을 형성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정영문 소설의 개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모호함과 지지부진함이다. 그는 윤곽이 흐릿한 인물들, 선후와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사건들을 주로 등장시킨다. 그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존재감이 희박하고, 세계는 단단하지 않고 물렁물렁하다. 정영문 소설은 연극으로 치자면 부조리극에 가깝다. 논리와 의미의 자리에 비논리와 무의미가 들어서면서, 견고하다고 생각해 왔던 대상과 가치를 무장해제시킨다. 단편 열 편이 묶인 새 소설집 <목신의 어떤 오후>에서도 정영문 소설의 이런 특징은 완고하다. 표제작에서 ‘나’와 ‘그’, ‘그녀’ 세 사람은 호숫가의 공터에 소풍을 나왔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둘러앉아서 긴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주변의 자연과 사물을 무심하게 관찰하는 것이 전부이다. 소풍 대신 여행하는 두 사람을 등장시킨 <여행의 즐거움>에서 빌려 오자면,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은 요점이 없었고, 그래서 어떤 요점에도 이르게 되지 않았다.”(54쪽) 다시 표제작으로 돌아오자면 그들은 “일생이 하루로 집약되는 것 같은 하루를, 무척 나른하고 몽롱하고 길게 느껴지는 일생 같은 하루를”(80쪽) 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브라운 부인>은 ‘권총 강도’ 소년과 소녀를 등장시키지만, 이 소설에서 강도와 그 피해자들은 그들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거듭 배신한다. 강도 커플이 원하는 것이라고는 약간의 음식과 노래 부르기일 뿐이고, 피해자인 브라운 부인은 그들에게 두려움은커녕 왠지 모를 친근감조차 느낀다. 실수로 총을 제 허벅지에 쏜 강도가 구급대와 함께 출동한 경찰에 순순히 잡혀가는 것으로 이 ‘이상한’ 이야기는 마감된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 어쩌지 말란 말이다. 최재봉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