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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두 ‘문제아’의 실크로드 횡단 모험기

등록 2008-06-06 21:20

〈하이킹 걸즈〉
〈하이킹 걸즈〉
〈하이킹 걸즈〉
김혜정 지음/비룡소·9500원

여기 두 ‘문제아’가 사막에 섰다. 뻑하면 주먹다짐에 미혼모 딸이라고 흉보는 친구를 전치 12주가 나오도록 때린 은성이, 그리고 왕따 스트레스에 도벽이 생긴 보라. 고교생이라 꼼짝없이 소년원에 가든지, 청소년교화프로그램 시범사업으로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가든지 하란 말에 택한 길이다.

1200㎞의 비단길은 멀기만 하다. 비단같이 고운 길인 줄 알았건만, 모래 먼지 그득한 시골 길이다. 걸으면서 생각을 해야 한다고 엠피3 플레이어도 압수다. 인터넷 게임도, 휴대전화도 없이 찜질방 같은 더위 속을 걷는다. 몰래 담배 사러 나갔다간 은성이처럼 길을 잃기 십상이다. 약이 올라 인솔자 언니를 ‘구리다’며 골려도 보고, 밤마다 콕콕 찍어 바르는 아이크림을 몰래 내다버리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하긴 “걔네 아빠가 대법원에 있다느니, 큰아버지가 검찰총장과 단짝친구라느니” 하는 지연이를 때린 것부터가 어쩔 수 없었다.

아빠가 없어서 불편한 적은 없다. 밥상머리에 장조림만 있으면 오이지는 안 먹어도 상관없는 것처럼. 하지만 아빠 없는 애라는 놀림과 무시는 중학교 때 오래달리기 1등 한 번 한 것 말고는 잘난 게 없는 은성이가 주먹을 휘두르게 만든다. 자장면이 싫기는커녕, 몰래 자장라면을 끓여 혼자 다 먹어버리는 철없는 엄마는 자신을 낙타 등에 난 혹같이 못난 짐으로 여기는 것 같다.

슬슬 사막여행에 적응하려는 찰나, 내내 온순하던 보라가 갑자기 몰래 지갑을 훔쳐 도망을 간다. 왕따당하는 한국에 돌아가기 싫단다. 말리려고 따라간 것이, 되짚는 길을 몰라 둘이 함께 탈출한 꼴이 됐다. 사막의 밤은 이슥해지고, 이러다간 무단 이탈로 소년원에 가게 될 텐데 하고 마음이 죈다.

“모범 답안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되뇌는 두 여고생의 사막 횡단 모험기는 하이틴을 위한 성장통이라기엔 어린 감이 있고, 지나치게 정형적이다. 하지만 성장통이 그렇지 않은가. 낙타의 혹이 실은 영양주머니였듯, 성장통도 거름 같은 것. 그래서 나이 든 이들도, 낙타 방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막 상인처럼 아릿한 추억에 가슴 한켠을 내주곤 하는 것이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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