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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언젠가는 걸어가고야 말, 바로 그 길

등록 2008-06-27 20:34

〈로드〉
〈로드〉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정영목 옮김/문학동네·1만1000원

<로드>를 다 읽고 나서야 드는 의문. 우리는 이 작품을 묵시록으로 보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창세기로 보아야 하는 걸까. 읽어나가는 동안 이 작품은 분명 서구 문학의 중요한 토대 중의 하나인 묵시록적 상상력의 빛나는 승리로 받아들여진다. 불의 심판이 휩쓸고 지나간 후 황폐한 지상에 살아남은 생존자의 비참의 극에 달한 삶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 작품은 현대문명의 대파국에 대한 음울하면서도 강력한 경고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묵시록의 구성 요건으로 여겨졌던 모든 상징과 기호들은 실제로는 새로운 창세기를 알리는, 조심스럽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는 희망의 선포로 역전된다. 죽음과 절망의 땅을 가로질러 하염없이, 다만 하염없이 걸어가는 아버지와 아들, 이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것은 언젠가 도래하고야 말 그것을, 다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새 인류의 등장을 계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종말 이후의 세계’를 보여주는 묵시록이 아니라 성서의 창조신화를 대신하는 새로운 창세기, 구원을 향한 전인류의 기나긴 여정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경외성서의 첫 장으로 읽혀져야 한다. 이 작품이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가혹한 헐벗음과 위대한 단순함은 자기파괴적인 현대문명이 도달한 마지막 지점을 가리켜 보이는 차원을 넘어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장구한 역사의 시발점, 그 최초의 순간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고 있다.

남진우/문학평론가·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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