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남북민간교류 최일선에 선 작가
제땅에서 뿌리뽑힌 ‘유민 이야기’
“충심의 모델 만나 써야만 했다”
제땅에서 뿌리뽑힌 ‘유민 이야기’
“충심의 모델 만나 써야만 했다”
〈찔레꽃〉
정도상 지음/창비·9800원 탈북의 현실과 탈북자의 존재를 다룬 소설이 늘고 있다. 단편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며, 황석영씨의 <바리데기>와 강영숙씨의 <리나>처럼 긴 호흡의 장편으로 탈북과 탈북자를 그린 작품도 나오고 있다. 정도상씨의 <찔레꽃>은 단편과 장편의 중간에 해당하는 연작 소설의 형식으로 탈북 문제에 접근한다. 수록된 일곱 단편은 ‘충심’이라는 젊은 여성의 삶의 행로에 초점을 맞춘다. 함흥 음악학교 재학생이었던 충심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꼬임에 빠져 두만강을 건넜다가 인신매매단에게 잡히고, 헤이룽쟝성 조선족 마을로 팔려갔다가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뒤, 연변의 안마사 생활을 거쳐 한국 선교단체의 주선으로 몽골 초원을 건너 남한으로 오기까지 간난신고의 여정이 급박하게 전개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구약의 출애굽기나 영화 <엑소더스(영광의 탈출)> 식의 감동적인 탈출기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주인공 충심의 탈북부터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북 이전 충심의 삶은 <함흥·2001·안개>에 상세히 그려져 있다. 심각한 식량난 때문에 세 끼를 죽으로 때우는 게 예사이고, 연료 부족으로 기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국경 가까운 지역에서는 밀무역이 성행하는 등 북한의 경제 사정이 극히 어려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충심의 경우는 인신매매단에게 속아 국경을 건넌 뒤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며, 우여곡절을 거친 끝의 남한행 역시 ‘신분증’이 없는 불안한 처지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출구가 남한이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은 충심이 남쪽에 ‘정착’한 뒤 노래방 도우미로 웃음과 몸을 팔며 여전히 지옥 같은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그린 표제작 <찔레꽃>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사람답게, 나이에 어울리게 살고 싶었다. 좋은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저녁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 곱게 화장하고, 동무들과 밤마실을 다니며 수다떨고 남의 흉도 보면서(…)”(157쪽)
안마사 시절 이야기를 그린 <소소, 눈사람 되다>에서 따온 인용문에서 보다시피 충심의 소망은 결코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단 국경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 그에게는 이런 평범하고 소박한 꿈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높고 아득한 비원(悲願)으로 몸을 바꾼다. 인신매매단과 헤이룽쟝성의 사내들, 호의를 가장해 재산을 갈취하는 안마소의 조선족 언니 부부, 그리고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기획입국’시키며 영리와 선전 효과를 노리는 브로커와 선교사 들은 한결같이 그의 불리한 처지를 착취하고자 한다. ‘찔레꽃’이라는 제목은 제 살던 땅에서 뿌리째 뽑혀 화분에 옮겨 심어진, 유민(流民)의 상징으로 쓰였다.
연작의 첫편인 <겨울 압록강>은 작가가 안마사로 일하던 시절의 ‘충심’과 만났던 일을 거의 사실 그대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가난하지만 그 나름의 사랑과 행복을 만끽하는 중국인 일가족이 나온다. “우리가 탈북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게 바로 그런 삶의 온전성”이라고 작가는 강조했다. ‘6·15 민족문학인협회 남측 집행위원장’으로서 대북 민간교류의 최일선에 서 있는 그는 “남과 북을 동시에 상대하는 처지인 만큼 이런 소설은 쓰지 않았으면 했는데, 충심의 모델이 되는 인물을 중국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고는 문학적으로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정도상 지음/창비·9800원 탈북의 현실과 탈북자의 존재를 다룬 소설이 늘고 있다. 단편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며, 황석영씨의 <바리데기>와 강영숙씨의 <리나>처럼 긴 호흡의 장편으로 탈북과 탈북자를 그린 작품도 나오고 있다. 정도상씨의 <찔레꽃>은 단편과 장편의 중간에 해당하는 연작 소설의 형식으로 탈북 문제에 접근한다. 수록된 일곱 단편은 ‘충심’이라는 젊은 여성의 삶의 행로에 초점을 맞춘다. 함흥 음악학교 재학생이었던 충심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꼬임에 빠져 두만강을 건넜다가 인신매매단에게 잡히고, 헤이룽쟝성 조선족 마을로 팔려갔다가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뒤, 연변의 안마사 생활을 거쳐 한국 선교단체의 주선으로 몽골 초원을 건너 남한으로 오기까지 간난신고의 여정이 급박하게 전개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구약의 출애굽기나 영화 <엑소더스(영광의 탈출)> 식의 감동적인 탈출기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주인공 충심의 탈북부터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북 이전 충심의 삶은 <함흥·2001·안개>에 상세히 그려져 있다. 심각한 식량난 때문에 세 끼를 죽으로 때우는 게 예사이고, 연료 부족으로 기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국경 가까운 지역에서는 밀무역이 성행하는 등 북한의 경제 사정이 극히 어려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충심의 경우는 인신매매단에게 속아 국경을 건넌 뒤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며, 우여곡절을 거친 끝의 남한행 역시 ‘신분증’이 없는 불안한 처지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출구가 남한이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은 충심이 남쪽에 ‘정착’한 뒤 노래방 도우미로 웃음과 몸을 팔며 여전히 지옥 같은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그린 표제작 <찔레꽃>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사람답게, 나이에 어울리게 살고 싶었다. 좋은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저녁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 곱게 화장하고, 동무들과 밤마실을 다니며 수다떨고 남의 흉도 보면서(…)”(157쪽)
정도상 (〈찔레꽃〉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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