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의 털〉
〈열일곱 살의 털〉
김해원 지음/사계절ㆍ8800원 털, 이라니 그것도 열일곱 살의 털이라니.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하늘을 쳐다보는 표지의 소년마저 멋쩍어 보여 머리를 긁적이는 당신에게, 사실은 그 털이 머리털이고 이 책은 “두발단속에 항거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라고 말해버리면 실망할까. 그러나 이 책은 두발단속이 왜 부당한지 ‘당연한 소리’를 늘어놓는 그런 책은 아니다. 이발소집 손자로 앞머리 3㎝ 뒷머리 3㎝의 황금비율을 지키는 모범생 일호와, 17년 전 가출해 원양어선을 탄 뒤 소식이 두절된 아버지, 그리고 조선 말기 ‘채두관’(상투를 자른다 하여 이발사를 이렇게 불렀다)으로 일하며 양반님네 상투까지 싹둑싹둑 잘라냈던 고조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이발사로 일하는 할아버지 이들 삼대의 머리털 이야기다. ‘주인공이 특별한 아이도 아니고 이렇다 할 모험도 없는데 읽다 보면 이상하게 재밌다’는 평을 듣는 것은, 작가 김해원씨의 깔끔한 문장 사이사이 담긴 은은한 유머 덕분이다. “열일곱 살의 머리카락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욕망이 뒤엉켜 자라고 있어 그것들이 세상 밖을 기웃거리기 전에 무질러야 한다”고 믿는 이발사 할아버지 덕분에 등교 첫날부터 ‘범생이’가 된 인호. 머리가 길다고 친구 머리에 라이터를 갖다대는 선생님에게 저항했다가 졸지에 교무실로 끌려간다. “담임은 눈앞에 송일호가 서 있는데도, 기록부에 남겨져 있는 송일호를 찾느라 애썼다. 담임은 기록부에 있는 내 성적을 잣대로 내 행동을 평가할 것이다.(…)선생은 국어가 100점인 학생은 욕을 입에 달고 살아도 언어 능력이 폭넓다고 말할 것이며, 수학이 100점인 학생이 싸움질을 하면 논리적인 데다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까지 갖춘 탓이라 이해할 것이고, 영어가 100점인 학생이 가출을 하면 이문화에 호기심이 많아 항상 새로운 것을 습득하려 애쓴다고 할 것이다.” 일호가 두발규제 폐지시위를 계획했다가 선생님에게 걸린 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버지가 돌아온다. 이발소집 손자의 두발 투쟁이라는 아이러니 속에 얽힌 성장기가 삼대에 걸친 한국 현대사를 타고 흐른다. 청소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김해원 지음/사계절ㆍ8800원 털, 이라니 그것도 열일곱 살의 털이라니.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하늘을 쳐다보는 표지의 소년마저 멋쩍어 보여 머리를 긁적이는 당신에게, 사실은 그 털이 머리털이고 이 책은 “두발단속에 항거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라고 말해버리면 실망할까. 그러나 이 책은 두발단속이 왜 부당한지 ‘당연한 소리’를 늘어놓는 그런 책은 아니다. 이발소집 손자로 앞머리 3㎝ 뒷머리 3㎝의 황금비율을 지키는 모범생 일호와, 17년 전 가출해 원양어선을 탄 뒤 소식이 두절된 아버지, 그리고 조선 말기 ‘채두관’(상투를 자른다 하여 이발사를 이렇게 불렀다)으로 일하며 양반님네 상투까지 싹둑싹둑 잘라냈던 고조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이발사로 일하는 할아버지 이들 삼대의 머리털 이야기다. ‘주인공이 특별한 아이도 아니고 이렇다 할 모험도 없는데 읽다 보면 이상하게 재밌다’는 평을 듣는 것은, 작가 김해원씨의 깔끔한 문장 사이사이 담긴 은은한 유머 덕분이다. “열일곱 살의 머리카락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욕망이 뒤엉켜 자라고 있어 그것들이 세상 밖을 기웃거리기 전에 무질러야 한다”고 믿는 이발사 할아버지 덕분에 등교 첫날부터 ‘범생이’가 된 인호. 머리가 길다고 친구 머리에 라이터를 갖다대는 선생님에게 저항했다가 졸지에 교무실로 끌려간다. “담임은 눈앞에 송일호가 서 있는데도, 기록부에 남겨져 있는 송일호를 찾느라 애썼다. 담임은 기록부에 있는 내 성적을 잣대로 내 행동을 평가할 것이다.(…)선생은 국어가 100점인 학생은 욕을 입에 달고 살아도 언어 능력이 폭넓다고 말할 것이며, 수학이 100점인 학생이 싸움질을 하면 논리적인 데다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까지 갖춘 탓이라 이해할 것이고, 영어가 100점인 학생이 가출을 하면 이문화에 호기심이 많아 항상 새로운 것을 습득하려 애쓴다고 할 것이다.” 일호가 두발규제 폐지시위를 계획했다가 선생님에게 걸린 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버지가 돌아온다. 이발소집 손자의 두발 투쟁이라는 아이러니 속에 얽힌 성장기가 삼대에 걸친 한국 현대사를 타고 흐른다. 청소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