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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1월 1일 잠깐 독서

등록 2008-10-31 20:18

〈지방은 식민지다〉
〈지방은 식민지다〉
■ ‘서울공화국’을 무너뜨려라

〈지방은 식민지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나가지 말고 버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멀리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는 경고도 했다. 우리 사회의 중앙집중은 뿌리가 깊다. 오죽하면 서울공화국이겠는가. 실제 수도권의 국토면적은 12%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47%, 100대 기업체 중 95개, 공공기관의 90%가 몰려 있다. 더욱이 수도권 집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런 과도한 ‘서울쏠림’을, 글쓴이 강준만 전북대교수는 1970년대 종속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내부식민지’ 개념으로 바라본다. 서울과 지방이 단순한 정치·경제적 불균형 관계를 넘어 사회·문화적 지배와 종속 관계로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지역모순’은 중앙과 지방 모두에 책임이 있다. 중앙에서는 지방분권이 위험하다는 시각이 팽배하고, 지방은 연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내부개혁과 지방 인재육성에 소홀했다. 글쓴이는 교육분산을 그 해법의 하나로 제시한다. 서울 소재 대학의 지방 분산,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SKY대학의 정원축소를 주장한다. 지방언론의 활성화와 공공성 강화, 지역사회의 연고주의 극복과 책임성 강화를 위한 노력 등도 진정한 지방분권으로 가는 지름길로 꼽는다./개마고원·1만5000원.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 ‘한국경제 구하기’ 도박적 제안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왜 한국 경제는 금융 위험에 취약한가?’ ‘환율, 왜 널뛰기를 하나?’ 경제 문외한조차도 요즘 한 번쯤은 던져봤음직한 질문들이다. 싱가포르국립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신장섭 교수가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에서 이에 답한다. “각 나라의 역사와 제도를 중시하는” 제도주의자(슘페터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질문의 답과 대안으로 안내하기에 앞서, 경제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선입견’에 도전한다. 책의 1장에 “경제 통념 뒤집어 보기”를 배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정부’ 이분법을 버리자”, “고도성장 체념하는 것이 과학적인가”, “정경유착을 잘 해야 경제 발전 빨라진다”로 이어지는 지은이의 도전적인 접근은 신선하다. 고도성장만 놓고 보자. 그는 “한국의 현실이 중진국이고 앞으로 선진국이 되려면 상당 기간 세계 평균 이상의 고도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에게 고도성장이란 말이 구시대의 성과이자, 집착쯤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분명 용감한 주장이다. 사실 그의 생각은 최근에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고 주장한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의 글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 책은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췄으면서도, 단순한 투자 가이드북이나 경제상식을 전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청림출판·1만5000원.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미 원주민 학살 고발한 가톨릭 신부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

마르틴 루터, 독일 농민혁명을 일으킨 토마스 뮌처와 함께 유럽 3대 종교개혁가로 꼽히는 바르톨로메 드 라스카사스. 그러나 우리는 루터와 칼뱅은 알아도 뮌처나 라스카사스는 모르는 극단의 이념적 편향 속에 살아왔다. 라스카사스의 영성과 양심, 신앙의 깊이에 비하면 이중적이었던 루터의 삶은 오히려 위선적이고 천박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가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이후 유럽인의 무자비한 아메리카 원주민 살육(초기 50년 동안에만 1500만~2000만에 달했다!) 역사를 서술할 때도 근거로 삼은 15세기 라스카사스의 끔찍한 현장보고들. 그 역시 가톨릭 신부로서 식민지배자의 한 사람이었으나 사도 바울처럼 어느 순간 거듭 태어난 라스카사스는 유럽 문화와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타인종·타문명 식민지배와 학살과 약탈을 정당화한 당대 유럽사회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말살에 관한 진실이 부분적이나마 오늘날 제대로 전해진 것은 그의 덕이 크다. “저항과 거역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근본적 자세”임을 역설해온 박설호 한신대 교수의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는 그의 행적과 그가 남긴 문서들을 통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순 가득한 유럽의 식민사를 까발리고,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 성찰한다./울력·1만4000원.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민주화운동 속 여성주의에 대한 헌사


〈오빠는 필요없다〉
〈오빠는 필요없다〉
〈오빠는 필요없다〉

인권을 외치면서도 술김에 저지르는 성추행은 가볍게 생각한다. 똑같이 일해도 육아와 살림 등 뒷바라지는 여성 몫이다. 조직 안위를 이유로 성폭력 사건을 덮으려 한다. 보수적인 남성들 짓이라고?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남자들이 벌이는 ‘꼴보수’ 행태들이다. 2000년 진보진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100인위 사건’을 기억하는가? 여성활동가들이 진보진영 내부의 성폭력을 공개한 17건 중에는 성폭행·추행 등에서부터, 논쟁 뒤에 여성활동가 앞에서 콘돔을 불며 조롱하는 행위, 스토킹, 성관계 사실 유포, 협박과 애원이 뒤섞인 집요한 성관계 요구 등이 포함됐다. 진보는 성역이 아니다.

전희경씨의 <오빠는 필요없다>는 진보진영 안 여성주의가 걸어온 고단한 길에 대한 헌사다. 한때 운동권 남학생의 양말과 속옷까지 빨아준 게 1970~80년대 운동권 여학생들의 모습이었다면, 90년대 후반 여성활동가들은 누가 손님에게 “커피 한잔 하실래요?” 하고 묻는지 의식하기 시작한다. 개수대에 가득한 ‘컵 씻기’로 대변되는 노동에 대한 인정과 책임감이 남성에겐 없다는 깨달음, 운동권 여학생의 특징이던 ‘형’이라는 호칭이, ‘오빠’라는 호칭에 담긴 특정한 성역할을 거부하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이 그 시작이었다. /이매진·1만8000원.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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