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지음/샘터·1만1000원
‘샘터’ 연재 수필 묶은
고 장영희 교수 유작
“희망은 운명 바꾸는 위대한 힘”
“그때 나는 대답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오를 것이고, 그럴 바엔 노래를 부르는 게 낫다고. …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 그래서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
장애인이자, 9년에 걸친 암 투병 중에도 강단에 복귀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던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의 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나왔다. 지난 9일 57살로 세상을 뜬 그에겐 다섯 번째 수필집이자 마지막 책이 됐다.
기존의 수필들에서 보여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삶의 자세로 ‘문학을 통한 희망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그이지만, 그의 삶이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게 된 것도 모자라, 한 번도 감당하기 어려운 암 판정을 세 번이나 받았다. 2001년 유방암 판정을 받은 데 이어 2004년 척추암 진단을, 2006년엔 암이 간으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9년에 걸친 투병 중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며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두 번째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고 말했던 그다.
장 교수가 지난 2000년 이후 월간 <샘터>에 연재한 수필들을 모은 이 책엔, 소소한 세상 사는 이야기들과 제자들에게 보내는 사랑이 담긴 응원이 따뜻하게 녹아난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 마음속 어린아이는 죽지 않는다. 아무리 숨겨도 가끔씩 고개를 내밀고 작은 일에도 감동하는 마음,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슬퍼하는 마음으로 우리 가슴을 두드린다.”
절망에 굴하지 않는 위트도 새록새록하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책의 제목을 정하면서, 장 교수의 어머니가 말했던 ‘영희야, 뼈만 추리면 산단다’라는 문구가 거론되자 그는 삽화가부터 걱정한다. “화랑계의 ‘어린 왕자’라고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정일 화백의 그림은 서정적이고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이 제목을 택할 경우 새나 피아노, 천사 등을 그리는 정 화백이 표지에 뼈다구를 그려야 하는데, 그건 차마 청하지 못할 일이다”라고 천연덕스레 농을 건네는 그에게서 암환자의 고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길고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은 책 제목에 ‘기적’을 넣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 새삼 생각하면 난 다시 그런 기적 같은 삶을 살기가 싫다. 기적이 아닌, 정말 눈곱만큼도 기적의 기미가 없는, 절대 기적일 수 없는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그는 결국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마지막 유작의 이름을 달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적을 원한다. 암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더 크고, 확률에 위배되는 것은 ‘기적’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장 교수는 지난 3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뒤 4월 말 병상에서 손수 마지막 교정까지 봤을 정도로 신경을 썼지만, 인쇄를 마치고 첫 책이 나온 5월8일엔 이미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끝내 마지막 책은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기적’이, 독자들이 ‘살아갈 기적’이 됐으면 했던 그의 바람은 초판 3만부가 이틀 만에 동나면서 또다른 ‘기적’을 만들고 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