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전도연 15년 매니저 박성혜씨 책 출간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스타를 부탁해’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스타를 부탁해’
예전에도 그랬지만 2년여 만에 얼굴을 맞댄 그는 좀 더 아티스트 같은 풍모를 드러냈다.
패셔너블한 검은색 뿔테 안경에 물방울무늬가 있는 레깅스와 장화, 부스스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화장기 하나 없는 민얼굴로 나타난 이 호리호리한 여성은 어딜 가도 시선을 끌만 했다. 아쉽게도 이날 사진촬영은 거부했지만.
톱스타 김혜수와 전도연의 매니저로 15년간 활약한 그는 대형 매니지먼트사인 싸이더스HQ의 본부장으로 한때 배우 130명을 관리했다. 그러다가 2008년 4월 돌연 사표를 내고는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가 1년 만에 귀국해서는 최근 396쪽짜리 책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스타를 부탁해'를 펴냈다.
박성혜(40)씨를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도연과 오랜만에 밤새워 수다를 떨다 헤어지고 오는 길이라는 그는 전도연이 모는 차를 타고 카페에 도착했다.
앉자마자 일단 최근 '핫 이슈'인 김혜수-유해진 커플에 대해 물었다.
"두 사람 아주 잘 어울려요. 해진씨 아주 지적이고 좋은 사람이에요. 둘이 문화적으로 잘 통해서 잘 사귈 겁니다. 결혼요? 글쎄…. 현재로는 계획이 없을 거에요."
본론으로 들어와 2년 전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왜 사표를 썼나.
"사표를 쓸 때쯤 배우들의 전속계약금이 수억원 대로 치솟았어요. 1억~2억원 수준도 아니었어요. 그렇게 모든 것이 돈으로만 이야기되는 방식에 정이 떨어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매니지먼트 업계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회의가 들면서 지난 15년간 매니저라는 한우물만 팠는데 내 인생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계속 매니저를 하게 되더라도 잠깐 나 자신에게 안식년을 주고 '딴짓'을 해보자 싶었죠. 안식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웃음)"
글이라고는 그간 메모를 끼적이던 것이 전부였다는 그는 자신의 매니저 인생을 돌아보는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를 통해 숨어 있던 글솜씨를 발현했다.
그는 "줄이느라 힘들었다. 일단 쓰기 시작하니까 원고가 지금 책으로 나온 것의 2배가 되더라. 그동안 겪은 사건사고가 좀 많았겠냐"라며 웃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팝 음악에 심취했고, 성장하면서 왕성한 식욕으로 문화를 다방면으로 섭취하고 향유하던 그는 명지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쓰타서치라는 연예기획사에 취직하며 매니저가 됐다.
책에는 입사 직후 그가 곧바로 당대 톱스타 김혜수와 인연을 맺은 사연부터 2008년 싸이더스HQ에 사표를 내기까지 15년간 현장에서 겪은 희로애락과 생생한 경험이 감칠맛 나게 담겨 있다.
첫 만남에서 사자 머리에 키메라 같은 화장으로 김혜수를 '질리게' 만들었고, 사진 일을 하던 지진희를 1년간 설득해 배우로 만들기도 했다. 새내기 박해일, 조승우에게서 비범함을 발견한 기쁨과 키운 스타에게 배신당한 쓰라림도 있다.
박씨는 "매니저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데, 조금 다른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그동안 엔터테인먼트업계는 산업적으로 발전했지만, 아직 모래 위의 성 같아요. 매니저는 여전히 전문직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데, 한편으로 어린 사람들한테는 이 직업에 대한 환상이 있죠. 매니저는 육체적으로 노동의 강도가 엄청난 3D 직업입니다. 처음에는 인격적인 대접도 못 받게 되고요. 길게 보고 냉정과 열정이라는 두 가지를 끝까지 가져가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버티지 못해요."
이 책의 추천사에서 김혜수가 '내가 핸드폰 번호를 외우는 유일한 사람이고, 그녀가 매니저 일을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하늘이 두 갈래로 쪼개지는 심정이었다'고 말하고, 전도연은 '12년을 함께 한 나의 징글징글한 언니 매니저'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매니저가 결코 주인공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들의 조력자, 조직자가 될 수 있다. 좋은 매니저는 배우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도 하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며 "후방의 비애도 있지만 조력자로서의 묘한 매력이 있는 게 매니저"라고 말했다.
김혜수와 전도연이라는 스타를 만나 오랜 기간 함께하며 매니저로 성장하고, 자신이 자리 잡은 후에는 지진희,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등의 스타를 발굴하고, 키워낸 그는 "매니지먼트는 공을 들인 만큼 결과가 나온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과 이해관계의 정글에 스스로 엮일 준비와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매니저는 결코 배우와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와 매니저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같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죠. 바라보는 지점은 같지만 그 길을 가는 목적은 달라요. 또 매니저는 온갖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그 역시 올바른 가치관으로 극복해야 해요. 한 때 저도 자만한 적이 있었고,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느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매니저 지망생들에게 "매니저를 하고 싶으면 해 봐라. 하지만 끈기와 체력이 없으면 하지 마라"며 "그리고 고급인력이 많이 유입돼 매니지먼트업계가 더 발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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