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단편7개 묶은 3년만의 신작
불륜의 외피를 쓴 남녀사이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 탐구
불륜의 외피를 쓴 남녀사이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 탐구
〈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대설주의보가 내린 봄날, <대설주의보>의 작가를 만났다. 1982년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인 최승호의 시집 얘기가 아니다. <제비를 기르다>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윤대녕의 신작 소설집 제목이 또한 <대설주의보> 아니겠는가. 표제작을 비롯해 단편 일곱이 묶였다. 표제작의 주인공 윤수는 대설주의보를 뚫고 백담사를 찾아간다. 그곳에는 누가 있었던가. 오래전에 1년 정도 사귀었다가 헤어진 뒤, 몇 달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연락을 취하고 이따금씩 만나기도 하는 해란이 있었다. 윤수 자신은 둘의 관계를 두고 “늘 그리워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서로를 다시 찾게 되고 그때마다 헤어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관계”라 표현한다. 어처구니없는 모함과 오해로 갈라서야 했던 두 사람은 그 뒤 각자의 생의 행로를 좇아 멀어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애초에 서로를 알아보게 만들었던 생의 결락이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했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를 지금껏 이어 오게 만들었다.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도 없는데다 아예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은 해란이 최근에는 자살 기도까지 한 적이 있다는 소식이 윤수의 백담사행을 이끈다. 그러나 대설주의보가 윤수의 발목을 잡는다. 원통 읍내에서 전전긍긍하던 윤수는 해란과의 통화조차 여의치 않자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자정 가까운 눈길을 뚫어 보기로 한다. 원통에서 백담사 입구까지 20분 거리를 1시간에 걸쳐 달려간 뒤 남은 6킬로미터 남짓 눈길을 힘겹게 헤쳐 가던 그의 앞에 아르브이 차에 탄 해란이 출현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윤대녕씨
소설집 <대설주의보>는 가히 관계의 실험실 또는 관계의 보고서라 할 정도로 이런저런 관계의 탐구를 시연해 보인다. 그런 관계의 외양이 이른바 ‘불륜’의 외피를 쓰고 있기 십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파 또는 신파라는 말로 그것을 무지르기보다는 그 섬세하고 절절한 사연과 심사에 주목할 일이다. 관계란 나와 너와 그 사이에 성립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나의 문제이고 다른 누구가 아닌 나의 정직한 반영이기 때문이다. 변화 속에 변하지 않는 것도 물론 있다. “식탁에 엎질러진 물처럼 봄이 오고 있어” “숟가락을 이빨로 깨무는 심정으로” “변소에 앉아 있다 난데없이 지붕에 폭탄을 맞은 심정으로”와 같은 윤대녕 특유의 비유들이 그러하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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