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개신교 한쪽 ‘돈의 권력 삼성’ 비판 나섰다

등록 2010-04-08 08:16

월간 ‘기독교 사상’ 특집
김진호 목사 ㅣ 성공주의가 부조리한 행태 방치…오히려 ‘삼성의 성공’ 기대하개 해
김회권 교수 ㅣ 문제의 본질은 물신숭배의 고리…신학적 성찰·예언자적 분발 필요
불법 경영권 승계와 비자금 조성, 전방위 로비 등으로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삼성 문제’에 대해 기독교계 일각에서 비판의 입을 열었다. 삼성이 대표하는 ‘돈의 권력’을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숭상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되짚어봐야 한다는 취지다. 월간 <기독교사상>은 4월호에서 ‘이 시대의 신앙 ‘삼성’’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신숭배의 자화상으로서의 삼성 문제를 다뤘다. <기독교사상>은 다양한 교파의 필자가 참여하는 개혁적 성향의 신학 잡지다.

<기독교사상>은 “돈의 힘을 대표하는 삼성이라는 권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신앙에 가까운 숭배를 가지게 됐으며, 이런 분위기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다”고 진단한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인 김진호 목사는 ‘성공주의에 잠식된 우리의 빈 영혼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삼성의 부조리한 행태 등을 잘 알고 있면서도, 결국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불공정하더라도 잘못을 용인해줘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부조리를 방치하는 결과를 빚는다고 지적한다. 그런 논리 뒤에는 삼성의 성공에 따라 얻어질 국가와 개개인에게 돌아갈 경제적 수혜에 대한 기대가 있다. 김 목사는 이를 “성장일변도의 시장주의에 의존한 해석의 프레임”으로 풀이한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그에 따른 무한경쟁체제가 얼마나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 체감하고 있기에, 삼성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내면에 있는 ‘살아 남아야 한다’는 욕망은 되레 삼성의 성공을 기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가로 존경받고, 유죄 판결을 받은 지 1년도 안 돼 사면까지 받는 현실을 “단지 정치와 경제영역의 일탈이나 불법이라는 단순한 악의 문제가 아니라, 한층 정밀한 신학적 성찰을 요하는 문제”로 진단한다. 김 교수가 보기에 “삼성과 이명박 정부, 돈을 숭배하며 성공과 쾌락을 갈망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당기는 동맹자들”이다.

지난 2007년 10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에서 삼성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내용을 바탕으로 삼성그룹의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소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으나, 내내 ‘봐주기 수사’ 논란이 그치지 않았고 결국 지난해 말 사면됐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지난 2007년 10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에서 삼성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내용을 바탕으로 삼성그룹의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소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으나, 내내 ‘봐주기 수사’ 논란이 그치지 않았고 결국 지난해 말 사면됐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 등을 금권으로 장악한 삼성은 도덕·윤리·정의·인권가치 등을 삼켜버리는 대신 부·풍요·국가적 자부심·국가주의를 상징하며, 일종의 ‘신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앙으로 자리잡는다. 대중은 그 경제적 위력에 이끌려 ‘삼성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사이비 구원관에 빠져든다. 김 교수는 “삼성 비리의 뿌리는 비자금이며, 그 비자금의 용처는 인격(영혼) 매수”라는 김용철 변호사의 말을 빌려 삼성 문제의 본질을 물신숭배로 짚는다. 또 이러한 물신숭배의 고리에는 “자신의 욕망을 신격화하고 무한히 확장하려는 ‘자기확장욕’이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 문제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일찌감치 삼성 문제의 본질이 물신숭배를 중심으로 한 종교·철학적 문제임을 지적한 바 있다. 사제단은 2008년 삼성 경영쇄신안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경제라는 이름의 물신을 위해 모든 가치를 뒤로 미루는 국민 정서 또한 재벌의 범죄를 방관하거나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범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삼성숭배의 마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진호 목사는 ‘내면의 악마’와 싸웠던 예수의 모습을 제시하며 “성공주의적 세계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가치 등 우리 내면에 깃든 욕구와 대면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회권 교수는 더 나아가 “예언자적 지식인의 분발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빌려, “지식인은 권력에 흡수·고용되지 않고 독립적이고 비판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면서, 기업·국가기관·정당 등의 집단에 고용되지 않고, 되레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자기확장욕을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식인의 존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최근 펴낸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삼성특검 재판 결과에 대해 “법률가가 만명이 넘고 법학박사가 3000명이 넘는 한국에서 이 사건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분석한 글을 찾기 힘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 문제에 대해 좀더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연구와 분석이 없다면, ‘삼성숭배교’의 무한한 증식을 막긴 어렵다는 얘기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