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묻혔던 조선 고전 현대국어로 부활

등록 2010-04-21 19:34

‘삼대록계’ 국문장편 5종 첫 완역
‘삼대록계’ 국문장편 5종 첫 완역
‘삼대록계’ 국문장편 5종 첫 완역




궁중여인들 탐독 추정 ‘대하소설’
조혜란 교수 등 연구자 12명 연대
방대한 분량…편당 해독 6개월

1967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한글로 된 필사본 소설 89종 2000여책이 발견됐다. 궁중 여인들이 즐겨 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낙선재본’ 소설들 가운데에는 기존에 알려졌던 조선시대 소설에 견줘 보기 드물 정도로 매우 긴 소설들이 있었다. 주로 3~4대에 걸친 상류층 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들로, 가장 긴 <완월회맹연> 같은 작품은 무려 180권에 달했다. 연구자들은 작품의 ‘국적’을 먼저 따져봐야 했다.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작품들이었을 뿐 아니라, 중국 청나라 소설인 <홍루몽>의 국문 번역본도 함께 발견되는 등 국내 창작물인지, 중국 소설의 번역물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각종 사료 연구 등을 통해 결국 이 작품들은 조선의 창작 소설임이 확인됐고, 그 뒤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낙선재본 소설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알더라도 제목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늦게 발견된 까닭에 아직까지 연구자들만 개별 작품을 직접 접하고 있을 뿐 교과서에 실린 <홍길동전>, <구운몽>이나 <춘향전> 등 판소리계 소설, 방각본 소설들처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최근 낙선재본 가운데 분량이 가장 긴 편에 속하는 ‘삼대록계’ 국문장편소설 5종 21권이 현대 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소현성록> 연작(15권 15책, 번역본 전 4권), <유씨삼대록>(20권 20책, 번역본 전 4권), <현몽쌍룡기>(18권 18책, 번역본 전 3권), <조씨삼대록>(40권 40책, 번역본 전 5권), <임씨삼대록>(40권 40책, 번역본 전 5권) 등이다. 삼대록계란 3대에 걸친 가문의 일을 기술하면서 앞작품과 뒷작품이 연결고리를 갖는, 일종의 대하소설이라 할 수 있는 국문장편소설의 무리다.


조혜란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조혜란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삼대록계 소설의 효시로 논의되는 <소현성록>의 번역을 주도한 조혜란(사진)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중들에겐 아직 생소한 국문장편소설이라는 장르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라고 말했다. “한글로 되어 있긴 하지만, 궁체 필사본인데다가 전고(典故)가 많이 쓰여 연구자들도 읽어내기 어렵다. 게다가 분량도 어마어마해서, 현대 국어로 옮겨놓은 번역본이 없으면 작품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낙선재본 국문장편소설은 국문학사에 새로운 발견인 셈인데, 그동안 작품의 텍스트 자체가 많이 퍼져나가지 못해 본격적인 연구가 아쉬웠다는 것이다.

읽고는 싶은데 혼자선 번역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 방대한 번역 작업의 계기가 됐다. 조 교수를 비롯해 비슷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연구자 12명이 ‘같이 해보자’고 모였고, 2005년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 프로젝트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2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회의를 열어가며 번역을 마쳤고, 그 뒤 교정 작업을 거쳐 이번에 출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한 작품을 읽어내는 데에만 평균 여섯 달이 걸렸다고 한다.

작품 자체는 어떨까. “비유하자면 오늘날의 ‘텔레비전 일일 연속극’과 성격이 비슷합니다.”


중국 상류층 가문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의 일상생활과 혼인담, 고부갈등, 형제갈등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직접 인용되고 심리적 변화 등에 대한 상세한 표현이 많다. 규방에 갇혀 있지만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많은 상류층 여성들이 독자층이었으므로, 이들을 만족시키는 ‘허구적 상상력’도 돋보인다. 조 교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강조한 <소현성록>에서도 딸과 며느리에게 유교적 규범을 강제하는 정도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등 작품 속에서 재미있는 연구거리를 더 발견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도 흥미로운 소재 제공이 가능할 것이라 한다.

조 교수는 ‘초역’이라는 점을 두세 차례 강조했다. 삼대록계 국문장편소설로서는 첫 번역이니만큼 대중적 관심과 함께 후속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교정을 봤지만, 번역 뒤에 원문을 그대로 실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