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록계’ 국문장편 5종 첫 완역
‘삼대록계’ 국문장편 5종 첫 완역
궁중여인들 탐독 추정 ‘대하소설’
조혜란 교수 등 연구자 12명 연대
방대한 분량…편당 해독 6개월 1967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한글로 된 필사본 소설 89종 2000여책이 발견됐다. 궁중 여인들이 즐겨 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낙선재본’ 소설들 가운데에는 기존에 알려졌던 조선시대 소설에 견줘 보기 드물 정도로 매우 긴 소설들이 있었다. 주로 3~4대에 걸친 상류층 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들로, 가장 긴 <완월회맹연> 같은 작품은 무려 180권에 달했다. 연구자들은 작품의 ‘국적’을 먼저 따져봐야 했다.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작품들이었을 뿐 아니라, 중국 청나라 소설인 <홍루몽>의 국문 번역본도 함께 발견되는 등 국내 창작물인지, 중국 소설의 번역물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각종 사료 연구 등을 통해 결국 이 작품들은 조선의 창작 소설임이 확인됐고, 그 뒤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낙선재본 소설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알더라도 제목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늦게 발견된 까닭에 아직까지 연구자들만 개별 작품을 직접 접하고 있을 뿐 교과서에 실린 <홍길동전>, <구운몽>이나 <춘향전> 등 판소리계 소설, 방각본 소설들처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최근 낙선재본 가운데 분량이 가장 긴 편에 속하는 ‘삼대록계’ 국문장편소설 5종 21권이 현대 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소현성록> 연작(15권 15책, 번역본 전 4권), <유씨삼대록>(20권 20책, 번역본 전 4권), <현몽쌍룡기>(18권 18책, 번역본 전 3권), <조씨삼대록>(40권 40책, 번역본 전 5권), <임씨삼대록>(40권 40책, 번역본 전 5권) 등이다. 삼대록계란 3대에 걸친 가문의 일을 기술하면서 앞작품과 뒷작품이 연결고리를 갖는, 일종의 대하소설이라 할 수 있는 국문장편소설의 무리다.
조혜란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중국 상류층 가문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의 일상생활과 혼인담, 고부갈등, 형제갈등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직접 인용되고 심리적 변화 등에 대한 상세한 표현이 많다. 규방에 갇혀 있지만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많은 상류층 여성들이 독자층이었으므로, 이들을 만족시키는 ‘허구적 상상력’도 돋보인다. 조 교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강조한 <소현성록>에서도 딸과 며느리에게 유교적 규범을 강제하는 정도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등 작품 속에서 재미있는 연구거리를 더 발견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도 흥미로운 소재 제공이 가능할 것이라 한다. 조 교수는 ‘초역’이라는 점을 두세 차례 강조했다. 삼대록계 국문장편소설로서는 첫 번역이니만큼 대중적 관심과 함께 후속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교정을 봤지만, 번역 뒤에 원문을 그대로 실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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