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생생한 기록
현장 취재한 사진기자의 경험에
만화가의 설명을 절묘하게 연결
오바마가 봐야할 ‘입체적’ 진실
만화가의 설명을 절묘하게 연결
오바마가 봐야할 ‘입체적’ 진실
〈평화의 사진가〉
디디에 르페브르·에마뉘엘 기베르 지음, 권지현 옮김.세미콜론·5만원. 2001년 미국이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지 않는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작전명은 ‘항구적 평화’였다. 그러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전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소련 침공과 90년대 군벌 내전 등을 돌이켜보면 이 나라가 겪고 있는 전쟁의 역사는 30년에 가깝다. 한 사람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세월이니 항구적 평화는커녕 전쟁에 더 익숙해질 만한 역사다.
<평화의 사진가>의 배경은 24년 전 아프가니스탄이다. 프랑스 사진기자인 디디에 르페브르가 소련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하며 경험한 일들을 만화와 사진으로 엮은 책이다. 그는 빗발치는 총탄과 벽력 같은 포성 속이 아닌, 국적·문화·관습 등을 뛰어넘어 ‘인도주의’ 의료 봉사를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경험한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다음해인 1980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역의 병원과 진료소 15곳에 치료와 의약품, 현지 의료진 교육 등을 담당할 팀을 파견하며 의료 봉사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르페브르는 1986년 국경 없는 의사회의 요청으로 르포 취재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북부 소련 접경 지역에서 진료소를 내려는 의료팀에 합류한다. 파키스탄의 페샤와르란 도시로부터 시작한 의료팀의 여정은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눈을 피해 험난한 산을 서너 개씩 넘어, 작은 마을인 야프탈에 진료소를 세우는 데까지 이어진다. 취재를 마친 뒤 르페브르는 홀로 페샤와르로 돌아오며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이런 힘든 여행 동안 르페브르는 필름 130통 분량의 사진을 찍었다. 거칠지만 아름다운 아프가니스탄의 자연 풍광에서부터 총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무자헤딘(무장 게릴라)들, 인도주의 가치 단 하나에 기대어 전쟁터를 누비는 국경 없는 의사회 의사들, 의료 혜택의 부족으로 진료소를 가득 메운 지역 주민들, 종교를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과 문화 등 다양한 모습들이 여기에 담겼다. 특히 총격·폭격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모습이나 척박한 사회경제 기반 등은 참혹한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을 보여준다. 단 르페브르의 사진은 전쟁터의 어려움과 참혹함을 앞세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단지 ‘불쌍한 피해자’로 못박지 않는다. 또 의료팀의 의료 봉사 활동 역시 마냥 숭고한 작업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들의 모습을 최대한 가감 없이 필름으로 기록하는 것에 주력했다.
뒷날 르페브르의 경험과 사진을 접한 만화가 에마뉘엘 기베르는 그 내용을 만화로 옮겼다. 그러자 사진과 만화가 함께 실려 서로를 보완해주는, 새로운 표현물이 탄생했다. 예컨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잘 아는 의료팀장 쥘리에트가 “차도르(이슬람 민속 의상)는 도시에서나 볼 수 있지 시골에서는 구하기조차 어렵다”며 차도르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서양인들의 편견을 지적하는 내용은 만화가 아니면 표현하기 어렵다. 반대로 3살 어린이의 죽기 직전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만화와 사진, 이야기를 함께 섞어 마치 읽는 이가 직접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보는 듯한 입체적인 체험을 주는 것이다. ‘인도주의’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걸 평소보다 절실하게 체험하게 만드는 계기라 할 만하다.
그밖에 책 마지막 부분에 실린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이 눈에 띈다. 후일담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소식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의료팀들은 2000년대 이후 대부분 현장을 떠났다고 전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미국을 상대로 계속되고 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말 병력 3만명 이상을 증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07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르페브르는 그 전에도 몇 차례나 아프가니스탄을 찾았다고 한다. 만화가 기베르는 “그가 살아 있다면 지금쯤 아프가니스탄의 외진 길을 걷고 있거나, 떠날 생각에 맘 설레어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디디에 르페브르·에마뉘엘 기베르 지음, 권지현 옮김.세미콜론·5만원. 2001년 미국이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지 않는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작전명은 ‘항구적 평화’였다. 그러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전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소련 침공과 90년대 군벌 내전 등을 돌이켜보면 이 나라가 겪고 있는 전쟁의 역사는 30년에 가깝다. 한 사람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세월이니 항구적 평화는커녕 전쟁에 더 익숙해질 만한 역사다.
〈평화의 사진가〉
그밖에 책 마지막 부분에 실린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이 눈에 띈다. 후일담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소식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의료팀들은 2000년대 이후 대부분 현장을 떠났다고 전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미국을 상대로 계속되고 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말 병력 3만명 이상을 증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07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르페브르는 그 전에도 몇 차례나 아프가니스탄을 찾았다고 한다. 만화가 기베르는 “그가 살아 있다면 지금쯤 아프가니스탄의 외진 길을 걷고 있거나, 떠날 생각에 맘 설레어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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