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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말로써 가르치기보다 배움을 일으키라

등록 2010-05-14 23:36수정 2010-05-14 23:41

옛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상대방이 스스로 깨치도록 길을 잡아준 대표적인 스승으로 꼽힌다. 다른 지식인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한 그의 교육철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게 이어져 아테네 학당의 기틀이 됐다.
옛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상대방이 스스로 깨치도록 길을 잡아준 대표적인 스승으로 꼽힌다. 다른 지식인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한 그의 교육철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게 이어져 아테네 학당의 기틀이 됐다.
수업 진행의 권력을 내놓고
공통의 관심사를 탐구하고
‘책’과 ‘학생’이 말하게 하라
〈침묵으로 가르치기〉
도널드 핀켈 지음·문희경 옮김/다산초당·1만8000원

종이와 연필을 준비한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며 가장 중요한 지식을 배운 경험, 이를테면 오래도록 중요한 영향을 끼친 배움의 순간이나 사건을 두세 가지 적어보자. 그리고 스스로 물어보자. 교실에서 일어난 일인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인가? 배움의 경험을 얻는 데 교사가 중요한 구실을 했는가? 했다면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전체적으로 배움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침묵으로 가르치기>의 지은이 도널드 핀켈은 “중요한 지식을 배운 중요한 사건은 대개 학교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교사 역시 중요한 구실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침묵으로 가르치기〉
〈침묵으로 가르치기〉

‘침묵으로 가르치기’라는 제목은 얼핏 모순적으로 보인다. 가르친다는 행위를, 교사가 학생에게 말을 하는 ‘강의’ 형태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흔히 지식이 많은 교사가 유창한 화술로 강의를 펼쳐놓으면 좋은 선생님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렇게 전달받은 지식은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 이것이 핀켈이 지적하는 ‘말로써 가르치기’의 폐해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하는 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지식은 한 사람에게서 한 사람에게로 전달될 수 없다”고 했다. 지식을 습득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철학을 뿌리로 삼아 핀켈은 “교사가 아예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입을 다문 교사는 무엇으로 가르쳐야 할까? 그는 여기에 ‘침묵으로 가르치기’로 이름붙인 대안적인 교수법을 체계적으로 풀어놓는다.

침묵으로 가르치기는 기본적으로 토론과 탐구, 글쓰기 등으로 이뤄진다. 핀켈은 7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교사 대신 ‘책이 말하게’ 한다. 강의 대신 좋은 책을 선정해 학생들에게 읽게 하여, 스스로 질문을 갖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또 ‘학생이 말하게’ 한다.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을 서로 주고받도록 하는 ‘개방형 세미나’를 통해 가능하다. 교사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토론의 흐름을 다듬어주는 구실을 할 수 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공통의 관심사를 탐구하는 방법도 있다. 기존의 교과 과목이나 형식을 벗어나 ‘소크라테스를 찾아서’라는 자유 주제로 자유롭게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탐구활동 자체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글쓰기도 좋은 방법이 된다. 강의록 배부, 정기적인 글쓰기 및 서로의 글에 의견 쓰기 등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하다. 학생들의 지적 경험을 미리 기획하는 방법도 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완결된 구조의 문제 묶음을 제시해 토론을 하도록 하는 ‘개념연구’가 그런 사례다.

더 나아가면,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교수법도 가능하다. 교사가 가르치기를 거부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권력 자체를 학생들에게 내놓는다. 혼란스럽겠지만 학생들은 ‘자치’라는 민주주의의 개념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아예 입장이 다른 두 명의 교사가 함께 수업에 참여하면 어떻게 될까. 권위를 떠나 학생과 교사가 서로의 입장으로 갈려 동등한 자격으로 말을 주고받게 된다.


핀켈이 제시하는 이러한 교수법은 분명 미국에서도, 아니 지구 어느 곳에서도 ‘널리 행해지는 교육’은 아니다. 핀켈 스스로도 1970년대에 “1주일에 나흘 동안 목에 마이크를 걸고 3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그 뒤 에버그린 주립대학으로 옮겨 21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에버그린 주립대에는 학과 구분도, 교수의 종신 재직권도, 학문적 서열도, 성과급도, 출판이나 연구에 대한 요구도, 학생이 지켜야 할 요건도, 심지어는 전공도 학점도 없었다고 한다. 핀켈의 교수법은 대부분 그곳에서 확립됐다.

널리 행해지는 교육을 넘어서 ‘좋은 교육’을 찾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핀켈은 “좋은 교육이란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일”이라며, 교사의 가르침이 아닌 학생의 배움이 교육의 목표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배울 수 있는 상황’에 특히 눈길이 간다. 그 스스로도 3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엔 침묵으로 가르치기를 만들지도, 실행해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와 비슷한, 아니 어쩌면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르치고 있는 우리 스승들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고 영감을 받더라도, 말이 아닌 침묵으로 가르치기를 실제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스승은 얼마나 될까?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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