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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축구의 인문학적 비밀? “일단 차 보시라”

등록 2010-05-21 20:20수정 2010-10-29 11:08

단순한 규칙·예측 불가능한 매력
평민 공놀이에서 세계 스포츠로
상업화 논란 속 ‘원초성’은 여전




〈축구란 무엇인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지음·김태희 옮김/민음인·1만8500원

2005년 피파(FIFA)는 207번째 축구협회를 거느리게 돼 유엔(UN)보다 많은 회원국을 갖게 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예상된 통계는 이러했다. 직접 경기장을 찾는 관중은 320만명이 될 것이며, 전 경기를 통틀어 400억명이 월드컵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고 그 가운데 16억명이 같은 날 같은 때 결승전을 보게 되리라.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4분의 1은 90분 동안 똑같은 일을 한다는, 즉 축구를 본다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축구란 게 뭐기에? 한낱 운동경기가 뭐 이렇게 대단한가? 교사이자 축구 전문 작가인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축구란 무엇인가>를 통해 축구에 대해 방대한 지식과 인문학적 성찰을 펼쳐놓는다. 바로 이 ‘축구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다.

축구의 비밀을 밝히려면, 그 자체로부터 다른 스포츠와 구분되는 독보적인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지은이는 축구의 ‘원초성’에 초점을 맞춘다. 축구는 단순하다. 공식적 시합의 규격화된 조건이 아니라면, ‘공에 손을 대지 말 것’과 ‘공은 차도 되지만 상대편을 차면 안 된다’는 두 가지 기본적인 금지 조항만 지켜도 축구는 시작된다.

“손을 쓰지 않고 상대 골대에 공을 집어넣으려는 두 팀 사이의 자유롭게 흘러가는 게임”이라는 경기 이념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공식 시합의 규칙도 경기 흐름이 끊겼을 때 다시 시작하는 방법(세트피스), 오프사이드 규칙 정도만 덧붙을 뿐,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럭비에서 ‘스크럼’ 규칙을 설명하기 위해 120쪽이 넘는 설명이 필요한 반면, 피파가 정한 축구 규칙은 전체 17개 조항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규칙으로 작동하면서도, “축구의 진행은 복합적이며 지적으로 까다롭다.” 축구의 매력은 늘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발로 공을 차기 때문에 선수는 공을 소유할 수 없다. 둥근 축구공은 선수들의 발과 발 사이에서 굴러다닌다. 선수들은 자기 의지를 가진 양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공을 (손보다는 서툰) 발로 공격해야 한다. 때문에 축구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변주로 흐른다. 저 유명한 “공은 둥글다”는 말은 곧 축구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은이는 말한다. “축구에서는 미리 정해진 유일한 텍스트, 곧 규칙만으로는 어떤 드라마도 나오지 않는다. 행위는 경기 자체로 비로소 발생한다.”

이러한 원초성은 오늘날 축구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대화 소재를 줬다”는 것이다. 축구의 역사를 두루 훑어본 지은이는 “축구는 민중의 예술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축구의 족보에는 뿌리들이 세계 곳곳에 무수히 많지만 오늘날로 이어진 축구의 원형은 잉글랜드에서 발견된다. 종종 소요사태로까지 이어졌던 ‘드잡이질’에 가까운 평민들의 폭력적인 공놀이가 상류층의 아카데미로 번졌고, 19세기 중반 그 규칙이 처음으로 확립됐다는 것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향유한 것도 다시 민중들이었다. 노동자들이 여가를 즐기게 되며 탄생하게 된 근대 스포츠 가운데 축구는 확고한 ‘노동자의 스포츠’였다. 지역 공동체와 긴밀하게 연결돼 축구 ‘클럽’이 태동했고, 축구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 속에 뿌리를 내렸다. 축구는 스포츠일 뿐 아니라 이상의 표현이 됐다. 친구와 적과 관계를 맺는 매개체가 됐고 전쟁과 폭력을 대신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효과를 내거나 시대의 담론을 반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축구는 ‘의미’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비약적인 성공 가운데 축구는 철저히 상업화됐고, 팬과 관중이 팀과 구단에 가지는 결속감과 일체감은 줄어들었다. 축구의 진정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아직 종료 휘슬은 불지 않았다”며 희망을 내비친다. 월드컵을 앞두고 나타나는 ‘흥분 현상’에 대해 “단순한 유행일 뿐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신 유행이 아닌 고전, 곧 여전히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공을 차는 수많은 클럽과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축구의 원초적 매력을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경험하는 한, 축구는 계속해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결국 지은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해 보인다. “축구의 비밀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가서 공을 차라!” 그러나 이것을 말하기 위해 총동원한 인문학적 지식들과 그 속에 담긴 무한한 축구 사랑은 감동마저 안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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