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공존재!〉
SF문법으로 인간을 통찰한
젊은 신예작가 단편 소설집
평론가 신형철의 ‘해설’ 눈길
젊은 신예작가 단편 소설집
평론가 신형철의 ‘해설’ 눈길
〈안녕, 인공존재!〉
배명훈 지음/북하우스·1만2000원 잘나가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배명훈(32)의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에 해설을 썼다는 사실은 하나의 사건이다. 내로라하는 시인·소설가 들이 해설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는 그가 문단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예 작가의 첫 소설집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배명훈은 지난해 자신의 첫 책인 에스에프 연작소설 <타워>로 이름을 알린 데 이어 올 초 출판사 문학동네가 제정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김중혁·편혜영·이장욱 등과 함께 수상한 기대주다. 본격문학(또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벽이 굳건한 한국 문단에서 그는 말하자면 ‘문단 바깥’으로 분류돼 왔다. <타워>에 쏟아진 열광과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격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장르문학이라는 ‘하위 범주’를 편견 없이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문단 안팎에서 힘을 얻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형철이 배명훈의 두 번째 책인 <안녕, 인공존재!>의 해설에서 “배명훈의 경우는 확실히 문단의 게으름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해야 하겠다”고 말한 것은 그동안 장르문학이 겪어 온 차별과 편견에 대한 본격문학 쪽의 사과 표시로 읽을 수 있다. 단편 여덟이 묶인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이 바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이경수는 첫사랑이었다가 가까운 친구로 지내 온 신우정이 자살하면서 자신에게 맡긴 발명품 ‘인공존재’ 앞에서 당황한다.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동그란 돌멩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이 물건은 전원을 연결하면 ‘존재’하기 시작하되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쓸모도 없는, “기능성 제품이 아니고, 말하자면 존재성 제품”이라는 것 아닌가. 신우정이 이런 물건을 왜 만들었으며 자살하면서 그 물건을 자신에게 맡긴 까닭이 무얼까 고민하던 이경수는 결국 자신이 탑승한 우주선에 인공존재를 태워서는 지구 밖으로 날려 보낸다. 인공존재의 자기 증명은 그런 다음에야 이루어진다: “존재를 우주로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존재의 남은 부분이 내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이경수는 그제서야 신우정이 남긴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게 된다. 에스에프의 외피를 쓴 이 작품은 존재와 고독, 죽음과 영원 같은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묵직한 사유를 담고 있다.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서도 에스에프라는 장르적 장치는 과학 지식과 인류의 미래상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인간의 본성, 그 한계와 가능성에 관한 탐구를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 동원된다. <크레인 크레인>은 중국의 절벽 위 오지 마을에서 버스를 들어올리는 크레인 기사 은경을 등장시킨다. 그 여자를 사랑하는 유부남 ‘나’가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그곳을 찾아가 보니 은경이 하는 일은 땅과 하늘을 이어 준다는 점에서 무녀(巫女)의 그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은경에 대한 사랑과 아내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가 절망적인 마음이 되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순간 은경의 크레인이 그를 들어올리고 그 크레인을 그보다 더 큰 크레인이 들어올리며,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다시 더 큰 크레인이 등장하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두 사람은 “태초의 크레인, 기중신의 도르래” 앞에 서게 된다. 애초에 그들의 운명을 점지한 이 절대자와 대면함으로써 두 사람은 비로소 고민에서 벗어나 ‘초월과 해방’에 이르게 된다. 핸드폰 매뉴얼에서 인류 멸망의 시나리오를 읽는 여섯 살짜리 소녀와 부모 잃은 그 소녀를 거두는 미혼 이모를 등장시킨 <매뉴얼>, 한국의 고고심령학회 탐사 팀과 중국의 공룡 화석 발굴 팀, 일본의 2차대전 불발탄 발굴 팀이 같은 장소를 발굴 대상으로 삼아 아옹다옹하다가 수억년 전 외계에서 온 탐사 차량의 화석을 발견하는 <누군가를 만났어>, 그리고 처음 두 개에서 출발해 52만여개로까지 늘어나는 변신합체 로봇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집단 권력을 야유한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등의 작품에서도 에스에프 장르 문법과 인간 및 세계에 대한 통찰의 결합은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걷어낸 자리에서 신형철이 이 소설집에 대해 내린 평가는 유효해 보인다. “인물들이 하나의 ‘실존’이기보다는 ‘기능’에 가까워서, 다 읽고 나면 이야기는 선명하게 남아도 인물들은 흐릿해진다.” 이말은 장르문학에 대해 본격문학 쪽에서 느끼는 아쉬움의 일부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북하우스 제공
배명훈 지음/북하우스·1만2000원 잘나가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배명훈(32)의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에 해설을 썼다는 사실은 하나의 사건이다. 내로라하는 시인·소설가 들이 해설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는 그가 문단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예 작가의 첫 소설집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배명훈은 지난해 자신의 첫 책인 에스에프 연작소설 <타워>로 이름을 알린 데 이어 올 초 출판사 문학동네가 제정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김중혁·편혜영·이장욱 등과 함께 수상한 기대주다. 본격문학(또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벽이 굳건한 한국 문단에서 그는 말하자면 ‘문단 바깥’으로 분류돼 왔다. <타워>에 쏟아진 열광과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격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장르문학이라는 ‘하위 범주’를 편견 없이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문단 안팎에서 힘을 얻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형철이 배명훈의 두 번째 책인 <안녕, 인공존재!>의 해설에서 “배명훈의 경우는 확실히 문단의 게으름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해야 하겠다”고 말한 것은 그동안 장르문학이 겪어 온 차별과 편견에 대한 본격문학 쪽의 사과 표시로 읽을 수 있다. 단편 여덟이 묶인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이 바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이경수는 첫사랑이었다가 가까운 친구로 지내 온 신우정이 자살하면서 자신에게 맡긴 발명품 ‘인공존재’ 앞에서 당황한다.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동그란 돌멩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이 물건은 전원을 연결하면 ‘존재’하기 시작하되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쓸모도 없는, “기능성 제품이 아니고, 말하자면 존재성 제품”이라는 것 아닌가. 신우정이 이런 물건을 왜 만들었으며 자살하면서 그 물건을 자신에게 맡긴 까닭이 무얼까 고민하던 이경수는 결국 자신이 탑승한 우주선에 인공존재를 태워서는 지구 밖으로 날려 보낸다. 인공존재의 자기 증명은 그런 다음에야 이루어진다: “존재를 우주로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존재의 남은 부분이 내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이경수는 그제서야 신우정이 남긴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게 된다. 에스에프의 외피를 쓴 이 작품은 존재와 고독, 죽음과 영원 같은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묵직한 사유를 담고 있다.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서도 에스에프라는 장르적 장치는 과학 지식과 인류의 미래상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인간의 본성, 그 한계와 가능성에 관한 탐구를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 동원된다. <크레인 크레인>은 중국의 절벽 위 오지 마을에서 버스를 들어올리는 크레인 기사 은경을 등장시킨다. 그 여자를 사랑하는 유부남 ‘나’가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그곳을 찾아가 보니 은경이 하는 일은 땅과 하늘을 이어 준다는 점에서 무녀(巫女)의 그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은경에 대한 사랑과 아내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가 절망적인 마음이 되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순간 은경의 크레인이 그를 들어올리고 그 크레인을 그보다 더 큰 크레인이 들어올리며,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다시 더 큰 크레인이 등장하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두 사람은 “태초의 크레인, 기중신의 도르래” 앞에 서게 된다. 애초에 그들의 운명을 점지한 이 절대자와 대면함으로써 두 사람은 비로소 고민에서 벗어나 ‘초월과 해방’에 이르게 된다. 핸드폰 매뉴얼에서 인류 멸망의 시나리오를 읽는 여섯 살짜리 소녀와 부모 잃은 그 소녀를 거두는 미혼 이모를 등장시킨 <매뉴얼>, 한국의 고고심령학회 탐사 팀과 중국의 공룡 화석 발굴 팀, 일본의 2차대전 불발탄 발굴 팀이 같은 장소를 발굴 대상으로 삼아 아옹다옹하다가 수억년 전 외계에서 온 탐사 차량의 화석을 발견하는 <누군가를 만났어>, 그리고 처음 두 개에서 출발해 52만여개로까지 늘어나는 변신합체 로봇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집단 권력을 야유한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등의 작품에서도 에스에프 장르 문법과 인간 및 세계에 대한 통찰의 결합은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걷어낸 자리에서 신형철이 이 소설집에 대해 내린 평가는 유효해 보인다. “인물들이 하나의 ‘실존’이기보다는 ‘기능’에 가까워서, 다 읽고 나면 이야기는 선명하게 남아도 인물들은 흐릿해진다.” 이말은 장르문학에 대해 본격문학 쪽에서 느끼는 아쉬움의 일부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북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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