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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섣부른 자유주의 수용, 진보 정체성 위협할라

등록 2010-07-21 17:59

왼쪽부터 김상봉, 박명림, 신진욱.
왼쪽부터 김상봉, 박명림, 신진욱.
범야권 ‘연합정치’ 이념 좌표로 거론 학자들 ‘자본주의적 자유’ 한계 지적 “공공성 담론 선행돼야” 비판 목소리
세 학자 ‘진보적 대안 담론’ 비판

최근 진보진영에서 ‘진보적 자유주의’ 등(<한겨레> 6월12일치 6면) 자유주의 담론이 대안담론으로서 심심치 않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동안 보수진영은 자유주의를 반공 이데올로기로 오용하고 진보진영은 이 때문에 외면해왔다는 반성에서 출발해, 진보진영이 정치적 자유주의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 담론의 뼈대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경계와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진보신당의 정체성과 이념적 좌표를 두고 칼럼니스트 김규항씨와 진중권씨 사이에 최근 벌어졌던 ‘자유주의자 규정’ 논쟁은 진보진영과 자유주의의 쉽지 않은 만남의 한 징후로도 읽힌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최근 집필하고 있는 <진보신당 강령 해설집> 원고에서 “자유가 ‘선택의 자유’로 이해되면 자동적으로 ‘소유의 자유’로 간주되는데, 여기서 자유주의의 싹이 트고 이로부터 자본주의라는 나무가 자라나며, 마지막에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열매로서 그 나무에 달린다”며 자유주의를 비판했다.

진보신당 강령은 전문 1장에서 “참된 자유와 만남이 실현된 나라를 향해 현실국가를 끊임없이 지양하는 활동이 정치이다”라고 밝혀, 자유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참된 자유를 추구하는 것과 자유주의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구의 근대를 이뤄낸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선택과 소유의 자유’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는 곧 “봉건적 억압에 저항해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을 첫째가는 가치로 내걸고 출발했던 근대 세계가 자본주의로 귀착된 까닭”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풀이다. 진보적 자유주의 등에서 말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설정이라는 비판인 셈이다.

당 강령이 강조하고 있는 자유는 “스스로 자기를 형성할 수 있는 자유”다. 이 자유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으로, 개인의 ‘만남’이 이뤄지는 공동체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개인이 전체의 주인이 될 때에만 개인의 자유가 온전한 의미에서 가능하다”는 함석헌 사상에 주로 기대고 있다. 김 교수는 “자유를 소유로 본 근대 사회에서는 결국 자유와 평등이 서로 모순됐다”며 “이를 넘어서는 것이 진보”라고 주장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도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느냐”며 “자유주의는 진보의 대안담론이 될 수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나라의 자유주의가 반공 이데올로기로 오용되는 등 충분히 정착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재벌 공화국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시장의 자유 등 한편에선 자유주의가 만개했던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곧 기업·언론·금융·교육·정부 등 모든 방면에서 과도한 자유주의 때문에 ‘사사화’(私事化) 현상이 나타나고 공공성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진보진영이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때문에 박 교수는 “진보의 대안담론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복지 등 공공성을 되살리는 담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구분된 정치적 자유주의의 필요성 주장에 대해서도 “굳이 자유주의 담론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인권·시민권 등 시민의 권리는 그 자체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말했다. 꼭 자유주의라는 담론의 외피를 걸치지 않아도 시민의 사회적 권리 실현은 충분히 추구할 수 있으며, 진보는 공공성 회복을 뼈대로 삼는 대안담론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진보진영의 자유주의 논쟁은 현실 정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민주정권 10년을 지나며 진보정당은 새로운 이념적 좌표를 찍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또 지난 지방선거 때 야권연대에 승리를 안겨줬던 ‘연합정치’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해, 연합정치의 구심점을 찾는 것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때문에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가 뜻을 함께할 수 있는 대안담론으로서 자유주의가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앞으로 자유주의 수용과 진보의 정체성 개혁 사이 어느 곳에 더 무게가 실리냐에 따라, 민주당 중심의 연합정치가 될 것이냐 진보의 재구성으로 만들어진 진보통합정당이 힘을 받는 연합정치가 될 것이냐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그동안 진보가 이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외면했던 자유주의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긍정적이라 생각하지만, 진보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수준의 자유주의적 발상에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자유주의의 양면적 성격을 지적했다. 일부에서 보여지는 노동조합·시민단체에 대한 가치 격하나 국가의 구실에 대한 소극적 태도 등은 신자유주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다.

자유주의는 그에 대한 풀이가 워낙 분분해 앞으로도 논쟁이 계속될 전망이지만, 담론의 이름보다도 내용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론적 토대를 자유주의에 두건 안 두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진영에서 보편적 복지나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통제가 폭넓게 강조되고 있다는 것은 눈에 띄는 지점이다. 김상봉 교수는 “과거에 민주주의가 다양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한데 묶었듯이, 지금은 복지나 공공성에 대한 열망이 다양한 사람들을 묶어낼 수 있는 전체적 의제이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봤다. 다만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고민 등 그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 진보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김경호,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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