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
가부장·지배 이데올로기에 밟힌
대리모 여종 하갈·삼손의 아내…
주류적 해석 뒤집은 이야기 19편
대리모 여종 하갈·삼손의 아내…
주류적 해석 뒤집은 이야기 19편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
김진호 지음/삼인·1만2000원 기원후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아타나시우스는 27개의 텍스트를 가장 위대한 텍스트, 곧 ‘정전’(正典)으로 공포하면서, “누구도 첨삭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성서를 해석하는 일에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의 지은이인 김진호 목사는 “좀 과장해서 단언하자면, 그리스도인에게 ‘독서 행위’는 있으나 ‘독서’는 없다”고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손에서 떼지 않고 이미 나와 있는 답은 자나 깨나 늘 다시 새기지만, 새로운 답을 찾아내기 위해 성서를 ‘읽는’ 행위는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민중신학 연구자로서 제도권 신학의 바깥에서 깊이 있는 신학 연구를 해온 지은이는 이 책에서 성서 속에서 성서의 잠재적 화자가 외면하고 소홀히했던 인물들을 주목한다. 그리고 억눌리거나 제거됐던 그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내는 방식으로 성서를 뒤집는다. 지은이는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19개의 성서 속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첫번째 이야기인 ‘하갈과 사라’는 지은이가 성서를 뒤집어 읽는 방식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원수 종족인 이집트 출신이면서 그들의 종인 하갈에 대한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뿌리 찾기’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가 없던 아브라함과 사라는 여종인 하갈의 몸을 빌려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야훼의 약속대로 그들의 아이인 이삭을 낳게 된다.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사라의 괴롭힘을 당하다가 쓸쓸히 쫓겨난다. 성서의 주류적 해석은 아브라함 가문의 질서가 어떻게 지켜지고 이스라엘 조상의 정통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심을 갖는 민족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하갈은 종족적(이집트 출신)·계급적(종)·성적(여성)으로 성서의 주류적 해석이 내포하는 배타주의적 가치에 착취당한 사람이다. 지은이는 타인의 억눌린 욕망을 위해 소비되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하갈의 상징성을 읽어낸다. 또 주류적 해석과 다른 성서 속 하갈의 의미를 다시 찾아낸다. 하갈은 하느님을 만난 성서의 첫 인물이며, 그의 이름을 부른 첫번째 사람이다. 또한 약속의 아이를 낳은 성서의 첫 여성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으로 지은이가 되살려내는 인물들은 모두 성서 속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 특히 죽거나 억압받거나 고통을 당하는 약자들이다. 그들의 대척점에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주의, 이스라엘의 전통과 보수적 민족주의, 정치권력과 같은 지배 이데올로기 등이 있다. 여기에 속해 있는 성서의 잠재적 화자는 죽거나 억압받고 고통 받는 조연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다. 때문에 조연들은 그 이름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하기 일쑤고, 이들의 이야기는 띄엄띄엄 전달될 뿐이라는 것이다.
‘삼손과 델릴라’로 유명한 삼손은 일찍이 딤나 지방에 있는 여성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유다 종족과 블레셋 종족 사이의 갈등 속에 휘말려 그 여성과 일가족은 동족의 손에 불태워지고, 분노한 삼손은 닥치는 대로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다. 성서의 주류적 해석은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편드는 하나님’을 강조하지만, 단지 삼손의 마음을 설레게 한 죄로 희생되었던 딤나 여성은 그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그의 목소리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거룩함을 가장한 폭력의 언어에 의해 도륙된 무지렁이의 소리이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신음소리이기도 하다”며 “이러한 소리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탈이집트 시대에 ‘백성 위에 군림한다’고 비판하며 모세에게 저항했다가 숙청당한 다단과 아비람, 고라의 이야기, 다윗의 첫째 아들인 암논이 정적인 이복동생 압살롬을 쳐내기 위해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성폭행한 이야기, 남성 권력자의 변덕에 따라 자신의 명을 걸 수밖에 없는 밧세바와 에스더의 이야기 등에서 지은이는 권력투쟁의 희생자들, 힘없고 고통 받는 조연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낸다. 또 예수를 밀고한 가롯 유다의 이야기로부터 우리 내면의 악마를 외부로 끌어내 심리적으로 해소하려 했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위선적 욕망을 읽어내고, 예수와 예수운동이 교회로 발전되면서 교회의 가부장적 성격을 굳건히 하는 장치로 활용된 성모 마리아 이미지의 허상을 읽어낸다. 이 책은 지은이가 그동안 펼쳐왔던 대중강의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누군가와 성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서 해석의 물꼬가 터졌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글머리에서 “(이 책이) 독자들이 성서와 생각과 의미를 서로 나누는 친구가 되고, 또한 성서를 통해 이웃과 친구가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상상력을 동원해 성서를 읽어나갈 때, 독점적 권력을 가진 누군가에게만 읽히는 성서를 넘어선 새로운 성서가 발견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김진호 지음/삼인·1만2000원 기원후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아타나시우스는 27개의 텍스트를 가장 위대한 텍스트, 곧 ‘정전’(正典)으로 공포하면서, “누구도 첨삭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성서를 해석하는 일에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의 지은이인 김진호 목사는 “좀 과장해서 단언하자면, 그리스도인에게 ‘독서 행위’는 있으나 ‘독서’는 없다”고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손에서 떼지 않고 이미 나와 있는 답은 자나 깨나 늘 다시 새기지만, 새로운 답을 찾아내기 위해 성서를 ‘읽는’ 행위는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민중신학 연구자로서 제도권 신학의 바깥에서 깊이 있는 신학 연구를 해온 지은이는 이 책에서 성서 속에서 성서의 잠재적 화자가 외면하고 소홀히했던 인물들을 주목한다. 그리고 억눌리거나 제거됐던 그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내는 방식으로 성서를 뒤집는다. 지은이는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19개의 성서 속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첫번째 이야기인 ‘하갈과 사라’는 지은이가 성서를 뒤집어 읽는 방식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원수 종족인 이집트 출신이면서 그들의 종인 하갈에 대한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뿌리 찾기’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가 없던 아브라함과 사라는 여종인 하갈의 몸을 빌려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야훼의 약속대로 그들의 아이인 이삭을 낳게 된다.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사라의 괴롭힘을 당하다가 쓸쓸히 쫓겨난다. 성서의 주류적 해석은 아브라함 가문의 질서가 어떻게 지켜지고 이스라엘 조상의 정통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심을 갖는 민족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구에르치노의 작품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 아브라함’(1657년). 사라가 등을 보인 채로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 밖에도 탈이집트 시대에 ‘백성 위에 군림한다’고 비판하며 모세에게 저항했다가 숙청당한 다단과 아비람, 고라의 이야기, 다윗의 첫째 아들인 암논이 정적인 이복동생 압살롬을 쳐내기 위해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성폭행한 이야기, 남성 권력자의 변덕에 따라 자신의 명을 걸 수밖에 없는 밧세바와 에스더의 이야기 등에서 지은이는 권력투쟁의 희생자들, 힘없고 고통 받는 조연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낸다. 또 예수를 밀고한 가롯 유다의 이야기로부터 우리 내면의 악마를 외부로 끌어내 심리적으로 해소하려 했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위선적 욕망을 읽어내고, 예수와 예수운동이 교회로 발전되면서 교회의 가부장적 성격을 굳건히 하는 장치로 활용된 성모 마리아 이미지의 허상을 읽어낸다. 이 책은 지은이가 그동안 펼쳐왔던 대중강의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누군가와 성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서 해석의 물꼬가 터졌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글머리에서 “(이 책이) 독자들이 성서와 생각과 의미를 서로 나누는 친구가 되고, 또한 성서를 통해 이웃과 친구가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상상력을 동원해 성서를 읽어나갈 때, 독점적 권력을 가진 누군가에게만 읽히는 성서를 넘어선 새로운 성서가 발견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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