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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삼성 없으면 내 밥줄이 끊기기 때문에…’

등록 2010-10-15 17:47수정 2010-10-15 17:50

〈굿바이 삼성〉
〈굿바이 삼성〉
‘삼성왕국’에 관대한 대한민국
“욕망 채우려 불법엔 눈감아”
국가는 파트너…불매운동이 대안
〈굿바이 삼성〉
김상봉·김용철 외 지음/꾸리에·1만7000원

그러나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 조성 등 삼성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나선 뒤에야 간신히 시작된 ‘삼성 특검’은 되레 이건희씨와 그 일가와 측근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이재용씨로의 경영권 승계마저 합법적으로 승인해줬다. 일부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은 이건희씨에겐 대통령이 얼른 나서서 유례없는 단독 사면을 내려줬다. ‘안기부 엑스(X) 파일’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에 대한 어떤 비리 의혹이 불거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의·공정사회와 같은 담론이 우리 사회에 흘러넘쳐도 삼성과 이건희씨 일가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굿바이 삼성>은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대에, 어떤 일을 ‘시작하라’고 권유하는 책이다. 삼성불매운동이다. 삼성과 관련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될 수 있으면 멀리하고 쓰지 말자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김상봉 전남대 교수와 김용철 변호사를 비롯한 철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시민운동가 등 15명이 글로 풀어낸 그 이유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언론사들이 미적거리며 제대로 광고를 실어주지 않았지만,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내부의 일그러진 모습을 폭로한 책 <삼성을 생각한다>는 15만부 넘게 팔렸다.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두터운 침묵이, 모르거나 믿지 않아서, 또는 관심이 없어서는 아니라는 얘기다. 대신 침묵 뒤에서 입방아를 찧는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왜 많은 기업들 가운데 삼성만 문제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딨냐’, ‘자기 돈 갖고 자기가 맘대로 하는 게 뭐가 문제냐’.

여기서 삼성 문제가 결국 ‘욕망’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적대적인 시민들의 태도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삼성이라는 쾌락의 대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망상은 이런 욕망의 상관관계 때문에 자연스러운 진실로 받아들여진다”고 짚는다. 고등학교 교사 이계삼씨는 “문제는 욕망이기 때문에 논리와 도덕으로 판판이 깨져도 저들은 절대로 이것을 인정하려 들지를 않는다”고 말한다. 좀 고약하게 말하면, ‘삼성이 없으면 나도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사회의 공공성 자체를 파괴하는 존재에 대해 아무런 손도 못 쓰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란 것이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쇼(CES)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가 전시장을 참관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삼성전자 제공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쇼(CES)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가 전시장을 참관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삼성전자 제공
그런 욕망의 논리들이 얼마나 성긴 것인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특정 사기업에 국수주의적 애국심을 투영하는 잘못은 시장의 근본 원리와 기업 활동의 본질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삼성이 망하면 어쩌냐고? “자본주의 시장 원리와 법 질서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이 가진 경쟁력으로 기업을 키워가야 하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생존 명제”다. 삼성이 해외로 이전해버리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떠나는 공장 이전이 아니라면, 극소수의 지분으로 그룹을 주물럭거리며 ‘황제경영’ 할 수 있는 이 기막힌 옥토를 왜 버리겠는가”.

그렇다면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해괴한 논리인 ‘자기 돈 갖고 자기가 맘대로 하는 게 뭐가 문제냐’를 한번 따져보자. 김상봉 교수는 묻는다. “2009년 10월 현재 이건희씨가 삼성 계열사에 대해 지닌 주식 지분은 1.07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최대 주주도 전문 경영인도 아니면서 한국 최대의 기업 집단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여기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지배 이데올로기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모든 사회 공동체가 반드시 주인을 가져야 하며, 사적으로 소유되고 지배되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사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인 공동체를 사적으로 소유한다는 발상 자체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홀로주체성’이 아닌 ‘서로주체성’을 강조하는 철학자로서 김 교수는 “‘제왕적 경영’을 ‘시민 경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왕의 국가(홀로주체)가 시민이 주인인 공화국(서로주체)이 되었듯, 자본가의 전유물인 기업 역시 노동자가 시민이자 주인이 되는 ‘폴리스’(Polis)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왜 하필 불매운동인가? “소비자들이 삼성의 물건을 사지 않는 것만이 지금으로서 삼성이라는 압도적 권력에 맞서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 권력과 정치마저 손을 놓고 삼성의 노동자·주주들의 활동에 한계가 있는 이상, 모든 가능성은 오롯이 소비자로서의 시민들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후대 사람들에게 삼성으로 상징되는 욕망의 주술에 모두 다 걸려든 건 아니라는 증거물”이라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말은 마지막 가능성에 대한 기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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