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국가를 사유화한 더러운 정치인”
“소외받는 대중을 일으킨 지도자”
대립하는 옐로와 레드…앞날은?
“소외받는 대중을 일으킨 지도자”
대립하는 옐로와 레드…앞날은?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파숙 퐁파이칫·크리스 베이커 지음/동아시아·1만8000원 아시아 국가의 정치 지도자. 재벌 기업인으로서 정치에 도전해 ‘최고경영자’(CEO) 정치가를 자처했다. 경제 성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면서도 ‘친서민’을 앞세웠다. 뿌리 깊은 관료주의 체제를 개혁하려 했다. 시민사회와 언론을 탄압하는 등 권위주의적 통치를 펼쳤다. 반대파들로부터 ‘포퓰리스트’라고 비판받았다.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익숙한 정치인 몇 명이 머릿속에 한꺼번에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건 단 한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타이의 전 총리 탁신 친나왓(61·사진)은 “국가를 사유화하고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비판을 받지만, 빈민·농민층으로부터는 “소외받는 대중을 일으켜준 지도자”로 칭찬받는다. 탁신은 2006년 쿠데타로 실각했지만, 그에 대해 극단적으로 다른 두 평가는 유혈사태마저 불러온 대규모 군중 시위 등 최근 혼란스러운 타이 정국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타이에서 손꼽히는 경제 석학인 파숙 퐁파이칫과 그의 남편인 저널리스트 크리스 베이커가 함께 쓴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는 탁신을 통해 타이의 정치·사회를 냉철하게 뜯어본 책이다.
화인(華人) 출신으로 신흥 기득권층 가문에서 태어난 탁신은, 엘리트 코스라고 할 수 있는 경찰에 입문했다가 사업에 몸을 담았다. 가문 대대로 하던 비단 가게로부터 시작해 이동통신·위성 등의 사업으로 발을 넓혔고, ‘친코퍼레이션’이라는 타이 최고의 재벌 기업을 키워냈다. 막대한 통신 수요가 창출되던 1990년대 초반, 정치권과의 특수관계를 맺는 데 성공해 재벌로 자리잡은 것이다. ‘금권정치’라 불릴 정도로 정경유착이 강한 타이였기에 탁신 또한 1994년 외무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초기에는 그저 그런 정치인이었던 그는 1997년 경제 위기와 새로운 헌법 개정을 계기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됐다. 경제위기의 타격을 덜 받았던 친코퍼레이션과 자신의 경영 능력을 앞세운 탁신은 당시 성장하고 있던 중산층과 시민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모았고, 그가 만든 ‘타이락타이’(TRT)당은 2001년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총리가 된 탁신은 “국가는 곧 기업”이라는 인식으로 모든 국가의 자원을 성장에 집중시키는 개발주의 정책을 펼쳤다. 이는 실제 경제 성장 성과로도 이어졌지만, 기존의 금권정치를 ‘거대 자본정치’로 확대하는 발판이 됐다. 여기에 강력한 권위주의 통치를 펼쳐 시민사회로부터 제기되는 각종 비판을 틀어막기도 했다. 그러나 거의 무상으로 의료를 제공받는 의료 시스템, 농민 부채 탕감, 마을금고를 통한 빈민층 신용대출 확대 등 각종 친서민 정책을 함께 펼쳐 대중으로부터는 인기와 지지를 끌어냈고, 타이락타이당은 2005년 선거에서도 압승한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6년 터져나왔다. 친코퍼레이션의 핵심 계열사를 세금도 내지 않고 외국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거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반탁신 세력은 ‘국민민주주의연대’(PAD)를 결성했으며, 이들은 왕정주의를 앞세워 군부와 손을 잡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탁신은 영국으로 피신했지만 친탁신 세력도 반격에 나섰다. 타이락타이당의 뒤를 이은 ‘피플파워당’(PPP)이 2007년 총선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 뒤로 노란색 옷을 입는 중산층 중심의 반탁신 세력(옐로셔츠)과 빨간색 옷을 입는 농민·빈민층 중심의 친탁신 세력(레드셔츠) 사이의 반정부 시위가 계속됐으며, 이에 따라 정권이 두 차례 뒤바뀌는 등 타이의 정치·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든 상태다. 자산조사위원회는 탁신과 그의 가족, 그의 동료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탁신은 자산의 대부분을 동결당했다. 그는 지금도 국외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지은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오랫동안 군부와 엘리트들의 독재 속에 억눌려 있던 대중정치가 급부상하면서, 사회 전반의 거대한 불균형을 반영하는 계급성이 나타난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이웃 국가들보다 높은 타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금권정치를 재벌정치로까지 키워버린 탁신은 어디 쪽에 있어야 하는가? 무상의료와 농민 부채 탕감 등 친서민 정책을 펼친 탁신은? 지은이들은 날카롭게 탁신을 비판한다. “원칙은커녕 도덕적·정치적 신념이랄 것도 없는 그였기에, 단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곧 애초에 스스로도 정치와 사업을 구분할 수 없었던 탁신을 어느 한쪽에 고정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옐로셔츠와 레드셔츠다. 지은이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탈법과 무법으로 국가 위기를 가중시켰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들은 타이의 정치 사회 운동의 시발점”이라고 기대한다. 두 집단 운동이 정당으로 연결돼 의회에서 만나거나 적정한 타협점을 찾아내는 등 앞으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파숙 퐁파이칫·크리스 베이커 지음/동아시아·1만8000원 아시아 국가의 정치 지도자. 재벌 기업인으로서 정치에 도전해 ‘최고경영자’(CEO) 정치가를 자처했다. 경제 성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면서도 ‘친서민’을 앞세웠다. 뿌리 깊은 관료주의 체제를 개혁하려 했다. 시민사회와 언론을 탄압하는 등 권위주의적 통치를 펼쳤다. 반대파들로부터 ‘포퓰리스트’라고 비판받았다.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익숙한 정치인 몇 명이 머릿속에 한꺼번에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건 단 한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타이의 전 총리 탁신 친나왓(61·사진)은 “국가를 사유화하고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비판을 받지만, 빈민·농민층으로부터는 “소외받는 대중을 일으켜준 지도자”로 칭찬받는다. 탁신은 2006년 쿠데타로 실각했지만, 그에 대해 극단적으로 다른 두 평가는 유혈사태마저 불러온 대규모 군중 시위 등 최근 혼란스러운 타이 정국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타이에서 손꼽히는 경제 석학인 파숙 퐁파이칫과 그의 남편인 저널리스트 크리스 베이커가 함께 쓴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는 탁신을 통해 타이의 정치·사회를 냉철하게 뜯어본 책이다.
레드셔츠의 반정부 시위 장면. 작은 사진은 타이의 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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