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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대와 불화했던 글로벌스타 존 레넌

등록 2010-12-03 21:25수정 2010-12-04 05:18

탄생 70주년, 사망 30주기 맞아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 등 추적
“그의 삶과 음악은 ‘자기 고백적’”
레논 평전
신현준 지음/리더스하우스·1만8000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중음악가로 꼽히는 존 레넌. 공교롭게도 올해는 그가 세상에 나온 지 70년,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위대한 음악가였어”라고 추어올리며 그를 형식적으로 추모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나, 음악평론가이자 대중문화 연구자인 신현준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그를 기리기 위해 좀더 진지한 길, 곧 <레논 평전>을 쓰는 일을 택했다. 그러나 그는 레넌의 삶을 빼곡하게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진 않는다. 어차피 한 사람의 ‘로컬 평론가’로서 ‘글로벌 스타’에 대한 모든 것을 추적하고 담아내기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지은이는 자신의 시각으로 본 ‘존 레넌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열중하며,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존 레넌을 가지길 바란다”고 한다.

지은이가 본 존 레넌은 한평생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발버둥을 친 사람이다. 그런 과정 속에 그의 음악과 삶은 상업적 스타덤에 오른 글로벌 록스타, 60년대 히피 문화와 연결된 반전평화운동가, 전위예술가, 급진적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모습을 드러냈다. 또 이러한 발버둥은 필연적으로 ‘시대와의 불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레넌은 1940년 영국 리버풀의 전형적인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선원이었던 아버지와 결혼 전 극장 안내원으로 일했던 어머니는 레넌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고, 레넌은 이모집에서 자랐다. 반항아 기질이 강했던 그는 당시 대부분의 청소년들처럼 미국의 로큰롤 음악 등 팝문화에 빠져들었다. 대중음악 역사상 전무후무한 콤비를 이루게 된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등과 만난 뒤, 이들은 1960년대 초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직업 밴드의 길에 나선다. 링고 스타가 드러머로 가세한 뒤 비틀즈는 4인 체제를 굳혔으며,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의 만남 뒤 세계적인 아이돌 스타로 등극한다.

그러나 역사에 남을 만한 인기를 얻으면서도 레넌은 오히려 자신의 세계를 진솔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정치와 계급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 등으로 그는 체제와 본격적으로 불화하기 시작했다. 전위예술가인 오노 요코와의 만남은 큰 전환점이었다. 남은 평생의 동반자가 된 이들은 68혁명의 어수선한 공간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 자체를 예술작품처럼 다루는 방식으로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는 평화운동을 벌여나갔다. 레넌은 이때까지만 해도 매스컴과의 접촉이나 대중 퍼포먼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다소 몽상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미 구성원들 사이에 불화가 시작된 비틀스는 1969년 결국 해체됐다.

1970년대 들어서 레넌은 본격적인 사회운동가로 변모한다. 그는 영국과 미국의 뉴레프트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의 사찰도 심해졌다. 지은이는 <워킹 클래스 히어로>(노동계급의 영웅)라는 곡을 들어 “레논이 개인적 관점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의 계급제도 등 고통의 사회적 뿌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명곡으로 꼽히는 <이매진>(‘상상해보라’) 역시 이때 만들어졌다.

그러나 1972년 대통령선거에서 베트남전을 지지하는 닉슨이 재선되고 미국의 좌파 운동도 한풀 꺾이며, 레넌은 다시 좌절을 맛본다. 새로운 시작의 기회는 요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숀으로부터 왔다. 이들 부부는 뉴욕에 터를 잡았으며, 레넌은 몇 년 동안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데 전념했다.


레넌이 다시 기타를 잡고 음반을 내는 등 본격적으로 복귀에 시동을 건 것은 1980년이었다. 또 파업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준비하는 등 여전히 민중의 힘에 기대를 거는 사상적 기반을 바탕으로, 정치활동에서도 재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열광적인 팬’임을 자처하는 한 청년이 쏜 총탄이 그를 영원히 좌절시켰다. 레넌은 12월8일 뉴욕의 집 앞에서 마크 채프먼이 쏜 총에 맞아 40살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레넌의 삶과 음악은 그가 숨진 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지금도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을까? 지은이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레넌의 삶과 음악은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자기고백적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대중들의 취향에 자신의 삶과 음악을 맞춰갈 수 없을 것이란 얘기다. 지은이는 팝스타의 신화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상을 만들어내고, 그 상상들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레넌의 위대함을 찾는다. 특히 지은이가 강조점을 찍고 싶어하던 것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신념으로 한평생 사랑과 평화를 위해 고통스럽게 투쟁했던 ‘혁명가’”로서의 레넌의 모습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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