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인문학-괴테에서 데리다까지
독일 사회학자 지멜의 시도 이어
‘경제성’ 배제한 사회철학적 연구
화폐와 문학·문자 연관성도 짚어
‘경제성’ 배제한 사회철학적 연구
화폐와 문학·문자 연관성도 짚어
화폐 인문학-괴테에서 데리다까지
이마무라 히토시 지음/자음과모음·2만3000원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일 수 있는 ‘존재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흔히 정신, 언어, 가족, 사회 등을 들지만, 이런 것들은 비록 단순한 수준이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사회철학자 이마무라 히토시(1942~2007)는 1994년 처음 출간한 책 <화폐 인문학>에서 ‘화폐’를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을 파헤친다. 그러나 여기서 지은이가 말하는 화폐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도구·소재로서의 화폐’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구성되는 ‘형식으로서의 화폐’다. 따라서 그는 기능론적 관점에 입각한 화폐의 경제적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존재론적 관점으로 화폐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화폐의 사회철학’을 연구했다. 지은이의 이런 접근 방법은,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1858~1918)의 시도를 이어받은 것이다. 1900년 써낸 <화폐의 철학>에서 ‘화폐가 왜 인간 세계에 존재해야 하는지’ 따져 물었던 지멜은, 인간은 숙명적으로 ‘관계의 매개 형식’으로서 화폐를 갖게 된다고 밝혔다.
원래 주술적·신화적 세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은 어떤 구분도 없이 모두 하나의 몸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여기에 균열이 생겨 주체(나)와 객체(대상)가 나눠지게 되면, 둘 사이가 멀어지는 한편 서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한 작용도 함께 일어난다. 지멜은 이를 ‘거리화’(Distanzierung)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멀리하다’와 ‘분리를 막는다’는 상반되는 작용을 모두 뜻한다. 곧 거리가 생기면, 그 거리를 메울 다리를 새로 놓아야 할 필요성, 곧 ‘매개’의 필요성도 생기며, 화폐는 바로 이 매개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여기에서 ‘죽음의 관념’이라는, 인간 고유의 존재 조건을 읽어낸다. 인간은 더이상 자연 상태와 일체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죽음의 관념을 갖게 된다. 이는 동물과 인간을 근본적으로 구분짓는 존재 조건이 된다. 인간은 죽음의 관념을 바깥으로 내몰고 싶어해 ‘제도화’ 또는 ‘합리화’를 추구하게 된다. 지은이는 “인간은 원초적인 거리화에서 태어난 죽음의 표상을 물질 또는 제도의 형태로 외부화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친연성’이라는 공포에서 해방되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죽음의 관념은 인간의 삶 전체를 물들이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죽음의 추방은 불가능하다.”
정리하자면, 화폐는 복수의 타자들과 대립하고 투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인간이 자연발생적으로 갖게 된 ‘관계 맺기’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물질이나 제도가 아니라 “내용에 관심이 없는 공허한 형식” 그 자체이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보편적이다. 지멜은 이런 점에서 화폐는 ‘지성’(논리), ‘법’과 나란한 존재라고 봤다. 또 인간이 사회적 인간인 이상, 모든 것을 교환할 수 있는 타인과의 상호 교통(交通) 또한 숙명적이고 근원적인 사실로서, 결코 회피할 수 없다고 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기본적인 분석틀을 갖고,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간다. 괴테의 <친화력>과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을 읽어나가며, 화폐 철학을 문학 분석에 적용한다. 예컨대 규칙이나 관습을 벗어난 인간이 최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제도화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혼돈을 그린 것으로 풀이하는 식이다. 또 루소와 데리다를 끌어와, 문자와 화폐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좀더 현실적인 이 책의 의미는,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종종 주장하는 ‘화폐 폐기론’에 대한 비판이다. 지은이는 “플라톤에서 마르크스까지 모든 사상가들이 화폐를 혐오하고 비판했지만, 홀로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 화폐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며 지멜을 높이 평가한다. 또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본질을 보지 못하고 소재·도구로서의 화폐만을 고려해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형식으로서의 화폐는 언어적 교통, 경제적 교통, 정치적 교통 등 모든 영역에서 출몰하며, 이런 매개자가 없다면 인간은 서로 직접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지은이 역시 화폐의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한다. 그는 “화폐 형식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명제가 자본주의의 영원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자본주의 근대가 가져온 ‘인간에 대한 화폐와 상품의 우월적 지배’를 경계했다. 그러나 형식으로서의 화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충실히 알지 못하면 새로운 전망은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곧 인간이 ‘화폐적 존재’임을 먼저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이마무라 히토시 지음/자음과모음·2만3000원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일 수 있는 ‘존재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흔히 정신, 언어, 가족, 사회 등을 들지만, 이런 것들은 비록 단순한 수준이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사회철학자 이마무라 히토시(1942~2007)는 1994년 처음 출간한 책 <화폐 인문학>에서 ‘화폐’를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을 파헤친다. 그러나 여기서 지은이가 말하는 화폐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도구·소재로서의 화폐’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구성되는 ‘형식으로서의 화폐’다. 따라서 그는 기능론적 관점에 입각한 화폐의 경제적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존재론적 관점으로 화폐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화폐의 사회철학’을 연구했다. 지은이의 이런 접근 방법은,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1858~1918)의 시도를 이어받은 것이다. 1900년 써낸 <화폐의 철학>에서 ‘화폐가 왜 인간 세계에 존재해야 하는지’ 따져 물었던 지멜은, 인간은 숙명적으로 ‘관계의 매개 형식’으로서 화폐를 갖게 된다고 밝혔다.
게오르크 지멜
다만 지은이 역시 화폐의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한다. 그는 “화폐 형식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명제가 자본주의의 영원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자본주의 근대가 가져온 ‘인간에 대한 화폐와 상품의 우월적 지배’를 경계했다. 그러나 형식으로서의 화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충실히 알지 못하면 새로운 전망은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곧 인간이 ‘화폐적 존재’임을 먼저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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