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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명산대찰’이 품은 꽃·바람·길…아름다워라

등록 2011-01-21 21:21수정 2011-01-21 21:41

명산대찰
명산대찰
108 사찰 생태기행-산사의 숲 (전 10권)
김재일 지음/지성사·각 권 1만7000원

인간과 자연의 어울림이 빚은
전국 108개 사찰의 생태 기록
옛날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금은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되는 충북 영동의 백화산 속에 반야사가 있다. 반야사 극락전 앞에는 중국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고, 주위에는 그리 튼실하지 못해 보이는 대숲이 있다. 관음전으로 가는 숲길 주변을 살펴보면, 감국, 개미취, 털여뀌, 비짜루국화 등 여러 종류의 가을꽃들이 보인다. 문수전으로 가는 숲길 끝에 있는 석천계곡은 2급수 어종인 모래무지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맑고 깨끗하다. 경이로운 사실은 이곳에 재첩이 있다는 것이다. “바다가 가까운 강의 하류에나 사는 재첩이 이렇게 깊고 깊은 심산유곡에 서식한다.”

전체 10권으로 이뤄진 <108 사찰 생태기행-산사의 숲>은 ‘사찰생태연구가’인 김재일씨가 전국 108곳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사찰 주변의 생태를 기록한 책 묶음이다. 반야사에 대한 기록에서 볼 수 있듯, 지은이는 산속 사찰에서 자신과 마주치는 모든 자연과 생명의 모습들을 꼼꼼하고 빠짐없이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우리 말에 ‘명산대찰’(名山大刹)이라는 말이 있다. 이름난 산은 대체로 유서 깊은 사찰과 함께한다는 뜻이다. 산은 자연을 품고 있고 사찰은 인간을 품고 있으니, 곧 자연과 문화의 조화를 뜻하는 말이 된다. 그래서 ‘사찰’과 ‘생태’를 조합한 지은이의 직업도 그리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108 사찰 생태기행-산사의 숲 (전 10권)
108 사찰 생태기행-산사의 숲 (전 10권)

지은이는 사찰생태에 대해 “문화적 요소가 들어가 있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볼 수 있고, 인간에 의해 관리된 자연이기 때문에 보존도 비교적 잘 되어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너무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숲이나 인간의 손질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 등은 개발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사찰 주변의 자연은 인간의 손에 관리가 되기 때문에 비교적 잘 보존됐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1990년대에 들어서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들이 나서서 사찰을 관광지로 재개발하고 주변 생태를 위협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환경운동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또 이에 대항하기 위해 반대운동뿐 아니라, 사찰의 자연생태가 지금 어떤지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이 책은 그런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전국 108곳 사찰을 찾아다니는 데 무려 7년이 걸렸다. “금강산 건봉사에서 땅끝 해남의 미황사를 거쳐 바다 건너 한라산 관음사까지, 바다 위에 뜬 서산 간월암에서 해발 1244m 설악산의 봉정암까지, 서울 도심 속 봉은사에서 산중 오지의 산내암자에 이르기까지” 안 가본 사찰이 없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산중의 전통사찰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으며,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조선총독부가 우리 숲과 나무를 조사해 만든 자료집인 <조선 수목죽류 분포도>를 참고했다.

지은이는 자신의 작업을 ‘생태모니터링’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사찰 주변의 숲과 개울 등을 살펴보면서 어떤 나무와 풀이 자라고, 무슨 물고기가 살고 있으며, 어떤 동물과 곤충들이 나타나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살펴보는 일”이다. 물론 각종 자료조사나 탐문조사 등의 과학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애정과 관심’이라고 한다. 화마(火魔)에 휩싸였다가 다시 생명을 꽃피워낸 강원 양양의 낙산사, 1년에 딱 한번 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잘 보존된 경북 문경의 봉암사, 인간 문화와 자연 생태가 잘 어우러진 전남 해남의 미황사 등 우리나라 산사와 숲의 온갖 모습을 그림처럼 펼쳐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애정과 관심의 힘 덕이리라.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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