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 해인사의 대장경판.
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오윤희 지음/불광출판사·2만원
오윤희 지음/불광출판사·2만원
불전전문가 오윤희씨가 집필
대장경을 ‘그릇’에 빗대 서술
과장 걷어내고 냉정한 평가도
올해는 고려에서 처음 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00년이 되는 해다. 여기서 말하는 대장경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현종 2년(1011) 때 만들기 시작했던 ‘초조대장경’이다. 이것이 부인사에 보존되어 있다가 몽골의 침략으로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만든 ‘재조대장경’이 곧 팔만대장경이다. 올해로 천 년 생일을 맞는 초조대장경은 그동안 세상에 전하지 않는다 여겨졌으나, 1965년 일본 교토 남선사에서 보존되던 일부가 확인된 뒤 우리 땅에서도 곳곳에서 발굴돼 그 존재를 드러냈다.
<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은 고려대장경연구소장을 지냈던 불전 전문가 오윤희씨가 대장경에 얽힌 이야기들을 대중적으로 풀어서 쓴 책이다. 지은이는 ‘팔만대장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라는 등 숱한 오해들을 넘고, 동아시아 전체를 끌어안은 오래된 지혜의 ‘그릇’으로서 대장경의 의미에 주목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지은이의 주제의식은, ‘장’(藏)이라는 글자에 압축되어 있다. 장은 그릇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에 성경이 있고 이슬람교에 코란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대장경을 ‘불교의 경전’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대장경이라는 그릇은 또 그 안에 담긴 지혜는 그 범위가 더욱 넓다고 말한다.
불교의 가르침은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으로 전한다. 부처는 제자들 앞에서 자주 “나는 감추어 쌓아둔 것이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깨달음을 감추지 않고 남김없이 모두 얘기해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처의 가르침을 여래(如來)의 법장(法藏), 곧 가르침의 창고라고 부른다. 그러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구전하던 시절이라 부처가 창고를 모두 열어젖혀도 미래의 중생들은 가르침을 접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부처는 제자 아난을 ‘법장을 담을 그릇’으로 선택해, 자신의 가르침을 오롯이 기억하고 미래의 중생들에게 전하도록 했다. 아난의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모도잡은’ 부처의 가르침이 바로 삼장이다. ‘모도잡다’는 말은 “모아서 모두 잡거나 가진다”는 뜻이라 한다.
그러나 대장경의 ‘대장’은 기본적으로 삼장에서 비롯됐지만 꼭 같지는 않다고 한다. 인도 지역에서 생겨난 불교가 여러 곳으로 널리 퍼져가면서 기존의 삼장 말고도 다양한 말씀들이 덧붙게 되는데, 대장경은 이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고려대장경 속에 기원전 2세기 서북인도를 점령하고 있던 그리스계 메난드로스 왕과 승려가 벌이는 논쟁을 기록한 <나선비구경> 등 삼장 밖의 문헌들이 대거 포함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곧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장경은 아시아 전역의 다양한 지혜를 결집하려 했던 그 시대의 반영인 셈이다. 지은이는 “미래의 대장경 안에는 기독교의 신약성서, 종교 사이의 대화나 논전에 대한 기억들도 포함될 것”이라고 말한다.
삼장을 결집하려는 노력이 목판인쇄술의 발달과 맞물려 처음 이뤄낸 결과물은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최초의 목판대장경 ‘개보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이것을 베껴서 만들었고, 재조대장경인 팔만대장경은 다시 초조대장경을 베낀 것이다. 따라서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셈이다. 베끼는 데 급급해 목록 체계도 엉망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다’, ‘오자가 없다’ 등 고려대장경에 대한 과장된 자화자찬을 걷어내고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흔히 속장경이라 불리는 ‘고려교장’을 펴냈던 대각국사 의천(1055~1101)에 대한 지은이의 관심은, 이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의천은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뒤 1000년째 되는 해에 불교에 입문했다. 고려교장 편찬으로 그는 기존의 삼장에 더해, 여러 종파의 주석서들을 모아서 묶는 ‘교장’(敎藏)을 결집해냈다. 또 이 과정에서 수집한 고금의 문장들을 묶어서 따로 하나의 장(藏)을 더할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 지은이는 “의천이 꿈꿨던 고려대장경은 당시 고려인의 생각과 꿈이 담겼던 명실상부한 ‘고려인의 그릇’”이라고 평가한다.
고려대장경 전산화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지은이는, 특히 디지털 시대를 맞아 ‘미래의 대장경’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고려 때 결집돼 1000년의 시간을 이어 온 대장경이 이제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그릇으로 다시 결집되고 있는데, 이를 또다른 새 천 년의 시작으로 봤다. 그런데 옮겨 담는 일은 깨뜨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매체의 그릇, 언어의 그릇, 민족이나 국가의 그릇, 문화나 전통의 그릇, 연구기관들의 이해관계, 담당자들의 공명심·경쟁심과 같은 그릇들을 몽땅 깨버려야” 새로운 모도잡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대장경을 ‘그릇’에 빗대 서술
과장 걷어내고 냉정한 평가도
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오윤희 지음/불광출판사·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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