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다양한 사상·문화…통합 아닌 접합을 목표로”

등록 2011-03-02 19:58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대안연구공동체 강의실에서 ‘대안연구공동체’의 설립을 주도한 4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철학자 이정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불문학자 이상빈 한국외대 대학원 교수, 김종락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대안연구공동체 강의실에서 ‘대안연구공동체’의 설립을 주도한 4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철학자 이정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불문학자 이상빈 한국외대 대학원 교수, 김종락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정우·이상빈·성일권·김종락씨
유럽 철학·언어등 60개 강좌 개설
“미국 패권주의 탈피·보편성 탐구
제도밖 배움터 네트워크 만들 것”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대안연구공동체 강의실에서 새로운 제도 밖 배움터인 ‘대안연구공동체’(CAS : Community for Alternative Studies) 설립을 주도한 4명을 만났다. 철학자인 이정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불문학자인 이상빈 한국외대 대학원 비교문학과 교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인 언론학자 성일권 박사,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인 김종락씨 등이다.

시민강좌 기관인 대안연구공동체는 사상·철학·문화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파이데이아’와 프랑스어·이탈리아어·러시아어·터키어 등 다양한 유럽 언어·문화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에콜 에라스무스’를 양대 축으로 삼는다. 오는 14일부터 시작되는 봄 학기에 60여개의 시민 강좌를 개설할 예정이다.

에콜 에라스무스의 교장을 맡고 있는 이상빈 교수는 “우리가 주로 배우는 언어는 영어·중국어·일본어 등에 쏠려 있어, ‘언어 패권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며 “세상을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에 대한 공부를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 인문학자의 이름이자, 현재 구성원들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조화를 꾀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이 실시하고 있는 대학생 교류 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하다. 곧 유럽의 다양한 언어를 배우면서 그들의 고유한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고, 미국 패권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성일권 박사는 “프랑스어로 된 텍스트만 접해봐도, 2008년 금융위기나 최근 아랍 혁명에 대해 우리가 늘상 접하는 영어 또는 영어 번역 텍스트와 얼마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터키어의 대표 번역자로 꼽히는 이난아씨를 필두로, 각 언어권의 대표적인 전문가들이 강좌에 참여할 계획이다. 고대 헬라어·라틴어부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스페인어, 브라질어, 터키어 등 영역도 다양하다. 또 언어를 기능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음악·영화 등 언어를 기초로 한 그 문화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이 교수는 “동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우 교수가 교장을 맡고 있는 파이데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시민 교양교육 과정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이민·인종 연구, 동서철학의 회통, 중앙아시아 유목미학, 생명과학과 인지과학 등 학제를 뛰어넘는 강좌들을 준비하고 있다.

파이데이아를 꾸리기 위한 이정우 교수의 문제의식은, 철학아카데미나 소운서원 등 그동안 제도 밖 배움을 꾸준히 실천해오며 스스로 느꼈던 고민과 연결된다. 그는 “우리가 배우는 사상이 너무 단절적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성리학이 들어오면 불교를 버리고, 서양이론이 들어오면 동양이론을 버리고, 마르크스주의가 일어나면 서양 부르주아 사상들을 버리고, 탈구조주의 사상이 유행하니 마르크스주의를 버리는 등 사상의 연속성을 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10년 동안 다양한 배움터들이 생겨나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여전히 서양의 기존 이론을 좇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이제 ‘학습시대’를 끝내고, 우리 스스로 사상을 만드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곧 다양한 사상들을 폭넓게 인정하고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작업을 통해, 헤게모니에 의해 왜곡된 보편성이 아닌 ‘진정한 보편성’에 대한 우리 나름의 탐구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에콜 에라스무스가 다양한 언어·문화에 대한 공부를 목표로 삼듯, 대안연구공동체가 전체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이정우 교수는 특히 들뢰즈와 가타리가 언급한 “통합이 아닌 접합”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대안연구공동체가 추구하는 또 하나의 목표는, ‘대안연구의 네트워크 구성’이다. 수유+너머, 아트앤스터디 등 비슷한 취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제도 밖 배움터들 사이에 연대와 협력을 이뤄보자는 것이다.

김종락 대표는 “‘통합이 아닌 접합’의 관점에서, 강좌를 교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공동체들과 협력을 쌓아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마포를 중심으로 연구공동체들과 출판기관들이 협력할 수 있는 현실적인 활동들을 찾는 것도 이들의 목표다.

이정우 교수는 “역사적으로 모든 살아 있는 학문은 강호(江湖)에서 나왔다. 학문이 자본·국가와 같은 천하(天下)라는 헤게모니에 종속되면 딱딱하게 굳는다”고 말했다. 무림의 고수들이 10년 동안 강호를 누비며 점점 무공을 높여가고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