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번 진짜 안 와
15번 진짜 안 와
자갈만한 바퀴벌레가 파닥파닥 날아다니는 자취방, 아침마다 차디찬 변기에 앉아 욕설을 내뱉는 암울한 서른살. 밴드는 와해되고, 일자리는 잘리고, 바람피웠다고 오해한 여자친구는 떠나버리고, 까짓 거 ‘록 정신’으로 버텨보려니 시름시름 몸까지 아파 죽게 생겼다. 여기서 죽으나 나가 죽으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에서야 목숨 같은 기타를 판 돈으로 레드 제플린의 고향 영국으로 떠난다. 영어도 배우고 일자리도 얻고, 노란 머리 여자친구도 생기고, 기타 실력으로 빛을 보는 성공담이 될까 싶지만, 불운은 런던에서도 소나기처럼 기다린다. 하지만 그도 기다리는 데는 이골이 난 인생이다. “15번을 기다리면서 좋은 건 사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다림이 길어지다 보면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버스인지 빤스인지 개뿔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지루함이 처절함으로 바뀌고, 와도 안 타버리겠어! 하고 비뚤어졌다가 어차피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허무의 경지에 닿게 된다.” 스포츠로 치자면 그가 기다리는 건 역전타다. 2006년 등단해 ‘웃기는 소설’을 지향해 온 박상의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는 이 기다림을 “농담 같은 진담들”(최정우 문학평론가)로 경쾌하게 엮어간다. 주인공의 깨진 앞니처럼, 불운은 아프고 처량하지만 우습기도 하다. “…그래도 울지 않기 위해 이 모든 게 아주 적극적인 몸개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죽진 않았잖아. 죽음으로는 아무도 웃길 수가 없지만 죽지 않았다면 웃어넘길 수 있잖아.” 우리네 젊음과 똑 닮은, 끝내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15번은 ‘진짜’ 안 오지만, ‘절대’ 안 오진 않으니까. 박상 지음/자음과 모음·1만2000원.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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