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P짱과 함께한 900일의 생명수업
감기 걸리고 입맛 잃은 모습 등
‘고기’ 아닌 생명으로서 돼지 알아가
일 오사카 초등생 ‘산 교육’ 기록
‘고기’ 아닌 생명으로서 돼지 알아가
일 오사카 초등생 ‘산 교육’ 기록
<돼지가 있는 교실> 구로다 야스후미 지음·김경인 옮김/달팽이출판·1만2000원
5살 난 조카 태성이는 살아 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다. “컴퓨터에서 보니까 진짜 돼지처럼 생긴 게 있다”고 말하는 게 전부다. 아이한테 돼지는 어떤 존재일까. “살이 통통하게 찌면 다 먹고, 우리에 가둬서 다시 먹어야지.”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돼지란 그저 먹거리일 뿐이다.
1990년 일본 오사카 히가시노세 초등학교에 부임한 신입교사 구로다 야스후미. 그는 아이들한테 생명과 먹을거리를 구별해 알게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담임을 맡게 된 4학년 2반 아이들과 ‘키워서 먹는 것’을 전제로 동물을 키우기로 한다. 덩치가 크면서 냄새가 나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문제가 없는 곳에 성장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쉽게 죽는 동물은 아이들이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는 생각에, 생명력이 강한 ‘사육 가축’이란 원칙도 세웠다.
‘잘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전제를 달고, 학교 안에 돼지우리가 만들어졌다. 유난히 무덥던 어느 여름날 ‘피(P)짱’이 온다. 아이들은 ‘피그’(Pig·돼지)에다 귀엽게 부르는 일본말 애칭 ‘짱’을 붙여 ‘P짱’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이렇게 ‘900일간의 생명수업’이 시작됐다. <돼지가 있는 교실>은 구로다 선생이 생명으로서 ‘돼지’와 ‘돼지고기’를 구별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아이들은 직접 돼지우리 확장공사를 하고, P짱을 먹이기 위해 학교 옆 노인요양원에서 남은 음식을 가져온다. 폐품을 모아 ‘P짱 키우기 자금’ 마련에도 나선다. 젖꼭지가 달렸어도 P짱이 ‘남자’라는 사실과 돼지도 감기에 걸리고, 입맛을 잃을 때가 있다는 것, 150㎏이 된 P짱이 이미 돼지고기로서 맛있을 때가 지났다는 것도 배운다. 아이들은 P짱과 함께 성장해갔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생명을 발견하며 조금씩 변해갔다. “급식에서 생명이 있는 것을 먹고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대부분이 생명이 있는 것이어서 깜짝 놀랐다.”(사사이케 이세이)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선택’의 시기가 왔다. 6학년이 된 아이들은 졸업을 앞두고 P짱을 계속 키울지, 식육센터에 팔지 결정하는 회의를 매일같이 했다. 아이들은 공동 사육에 참여해온 ‘3학년 1반’이 계속 키워야 한다는 ‘3학년1반파’와 ‘식육센터파’로 갈라졌다.
결국 구로다 선생은 P짱을 ‘식육센터’로 보내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 강제로 트럭에 실리면서 슬픈 비명을 지르는 P짱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 책은 ‘생명의 길이는 누가 결정할 수 있냐’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는 P짱 키우는 1년8개월의 과정을 30분짜리 테이프 105개 분량으로 찍어 다큐멘터리 ‘돼지 P짱과 서른두 명의 아이들’로 내놨다. 당시 ‘교육 현장에서 생명 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일어났다. 마에다 데쓰 감독이 만든 ‘P짱은 내 친구’라는 영화도 2008년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상과 관객상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최고 인기상을 탈 만큼 인기를 끌었다. 무모하면서 창의적인 지은이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돼지가 있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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