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이영훈 교수 ‘경제성장 기여론’ 논란
‘1950년대 철강 투자, 박정희 수출주도 공업화 밑돌’ 등 주장
“한-미-일 동맹 등 외적요인 무시” “결과론적 풀이” 비판
‘1950년대 철강 투자, 박정희 수출주도 공업화 밑돌’ 등 주장
“한-미-일 동맹 등 외적요인 무시” “결과론적 풀이” 비판
뉴라이트의 핵심 인사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학)가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이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에 밑거름이 됐다는 주장을 내놨다. 최근 몇 년 사이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이승만을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은 ‘국부’로 강조하는 시각을 보여왔는데, 경제사적인 측면에서도 이승만과 박정희 사이의 인과관계를 연결시키는 새로운 시도다. 13일 한국외교정치사학회 주최로 열린 ‘5·16과 박정희 근대화 노선의 비교사적 조명’ 학술회의에서 이영훈 교수는 박정희 정권이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기존의 수입대체 공업화 노선을 개방적 수출주도 공업화 노선으로 전환한 데 있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이 전환에 세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첫째는 이승만 정부 때 이뤄진 철강산업 기반시설 등에 대한 투자를 꼽았다. 박정희 정권은 집권 초기 2~3년 동안 체계적인 개발정책 없이 표류하다가 1963년 공산품 수출을 초과 달성하면서 수출주도 공업화로 경제성장의 돌파구를 발견했는데, 이 바탕에 이승만 정부의 철강 산업 재건이 있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3년 이해 공산품 수출을 애초 계획치인 640만달러를 크게 뛰어넘어 2810만달러치의 실적을 냈다. 이에 고무돼 이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보완해 수출 드라이브를 본격 시작하게 된다. 이 과정에 삼화제철의 용광로를 복구하는 등 50년대 이승만 정권이 제선, 제강, 압연으로 이어지는 철강 산업의 기본 줄기를 다듬었던 것이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박정희 정부를 구한 공산품의 수출시장은 그 이전 정부가 추구한 수입대체 공업화 노선의 결실에 다름 아니다”라며 “박정희 정부는 이승만 정부를 부정했지만, 실은 그 정부가 남긴 유산을 충실히 계승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둘째 요인으로 60년대 세계시장의 팽창과 노동집약산업의 후진국 이동이라는 세계시장의 구조적 재편 속에서 일본에 노동집약적 제품들을 가공수출할 수 있었던 한국의 지경학적 요인을 들었다. ‘천우사의 전택보, 삼성의 이병철 등 우수한 기업가 집단이 정부와 협조해 관·민 협동체제를 구축’한 점이 이 교수가 밝힌 셋째 요인이다. 이 교수는 “한-일 국교정상화 뒤에야 한국-일본-미국을 연결하는 자본, 기술, 시장의 국제적 연쇄가 자기 유지적인 체제로 정착할 수 있었다”며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대한 평가를 덧붙였다.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개발’은 뉴라이트 진영에서 한국 현대사를 인식하는 기본 주제다. 그러나 4·19혁명 정신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박정희 정부가, 4·19혁명에 의해 무너진 이승만 정부와 연결시키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의 이번 발표는 ‘성장 잠재력’이라는 경제사적 의미를 부여해 박정희와 함께 이승만을 ‘근대화의 주역’으로 연결지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에 대해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철강산업의 성과만으로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을 연결짓는 것은 무리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신용옥 내일을여는재단 상임이사는 “결국 이승만·박정희 정부와 기업가 집단이라는 내적 요인들이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 체제라는 외적 요인과 만나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주장”이라며 “그러나 이승만-박정희의 연결고리보다도 외적 요인을 어떻게 풀이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발표 내용을 보면 이 교수 역시 지경학적 요인과 한-미-일 동맹체제에 주목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담긴 종속적 성격과 이를 극복하려 했던 사회운동의 흐름 등은 전혀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로지 대한민국이 어떻게 후진 자본주의에서 중진 자본주의를 거쳐 선진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에만 급급해, 실제 역사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결과론적으로만 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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