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 흐르는 평양 시내의 조감도.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1953년 북한의 건축가 김정희가 만든 마스터플랜이 현재 평양의 기틀이 됐다. 효형출판 제공
생산·녹지·상징 공간 분석
도-농 격차 해소 등 장점
경제악화로 변화 시험대
도-농 격차 해소 등 장점
경제악화로 변화 시험대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임동우 지음/효형출판·1만8000원 이념에 사로잡힌 눈은 객관적 현실을 놓치기 쉽다. 북한에 대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독재와 핵 개발, 기아와 가난 등을 떠올리지만, 그것들 말고 북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객관적인 정보는 얼마나 될까? 도시설계를 전공한 건축가 임동우씨가 쓴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는 북한의 수도인 평양이란 도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다. 책머리에서 밝히듯 “건축가는 기성 저널리스트와 달리 북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어떤 화두를 던질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지은이는 “대중적으로 접하게 되는 걸러진 정보에서 한발 물러나, 그 이면에 있는 물리적으로 구축된 환경에 주목”한다. 철저한 건축가의 시선을 통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모델로 인정받았던 평양의 면모가 어떤지 드러내고,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짚어본 것이다. 전문가가 쓴 책이지만, 평양의 도시공간이라는 창을 통해 북한 체제의 실제 모습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지은이는 먼저 ‘사회주의 도시’란 개념을 풀이한다. 토지의 개인 사유가 주된 세금 수입원이 되는 자본주의 도시에서는, 세금을 써야 하는 공공영역은 최소화하고 세금을 매길 수 있는 사유지는 최대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때문에 공공영역이나 녹지공간을 무시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이에 대해 토지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도시는, 대도시화를 지양하고 도시재개발에 반대하며 도시와 농촌 지역의 융화를 꾀한다. 또 체계적인 도시계획에 의존하며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받는다. 여기서 나타나는 사회주의 도시만의 특징은, ‘생산의 도시’, ‘녹지의 도시’, ‘상징의 도시’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 도시는 도시 안에 생산시설을 배치하고 농업용지 등을 기반으로 한 녹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도시의 팽창을 막고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를 줄이려 한다. 여기에 도시를 다핵화하고 체제 선전에 필요한 광장이나 기념탑 등의 상징적 공간들이 결합된다. 평양은 이러한 사회주의 도시 개념이 충실히 반영된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로 평가받았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평양은 한국전쟁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수도 평양을 포기하지 않고 폐허 위에 도시를 재건하기로 결정했다. 1951년과 1953년 두 차례에 걸쳐 젊은 건축가 김정희가 만들어낸 마스터플랜이 그 기틀이 됐다. 1970년대까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체제 안정화를 구가하면서, 이 마스터플랜은 충실하게 현실의 평양 속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지은이는 이런 맥락을 고려해, 현재 평양의 모습을 이념적 편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양에 자리잡은 상징적인 광장은 그저 북한 독재정권의 욕망이 빚어낸 공간이 아니라, 사회주의 도시론에 입각한 공간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주거와 공장이 맞붙어 열악해 보이는 주거환경은 도시의 슬럼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 생산시설을 갖추고자 했던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이 반영된 것이란 풀이다. 그러나 현재의 평양에 대한 분석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앞으로 닥칠 평양의 변화가 지은이의 주된 관심사다. 1980년대 경제 상황이 나빠진 뒤 변화의 시험대에 올라서 있는 북한의 상황을 고려하면, 수도 평양은 체제 변화의 주된 실험대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새로운 도시 조직이 기존 조직을 대체하기보다는, 새로운 요소가 하나하나 더해져서 전체 도시의 모습과 형태를 바꾼다는 ‘인티그럴 어바니즘’ 개념을 제시한다. 곧 이미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로 건설된 평양이 어떻게 변화해갈 것이냐는, 어떤 ‘촉진제’가 도입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이에 따라 인민대학습당이 호텔이나 박물관으로 변화할 가능성, 김일성광장의 지하 공간 개발의 가능성 등을 예측해보기도 한다. 결국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평양이 시장경제 체제의 영향을 받아 변하더라도, 기존 자본주의 도시 조직과 똑같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인 생산, 상징, 녹지의 공간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도시에서 나타나는 도시화 문제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본화 과정으로 이행할 때 적절한 변형만 거친다면, 시장경제 원리를 흡수하면서도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예방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임동우 지음/효형출판·1만8000원 이념에 사로잡힌 눈은 객관적 현실을 놓치기 쉽다. 북한에 대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독재와 핵 개발, 기아와 가난 등을 떠올리지만, 그것들 말고 북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객관적인 정보는 얼마나 될까? 도시설계를 전공한 건축가 임동우씨가 쓴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는 북한의 수도인 평양이란 도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다. 책머리에서 밝히듯 “건축가는 기성 저널리스트와 달리 북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어떤 화두를 던질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지은이는 “대중적으로 접하게 되는 걸러진 정보에서 한발 물러나, 그 이면에 있는 물리적으로 구축된 환경에 주목”한다. 철저한 건축가의 시선을 통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모델로 인정받았던 평양의 면모가 어떤지 드러내고,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짚어본 것이다. 전문가가 쓴 책이지만, 평양의 도시공간이라는 창을 통해 북한 체제의 실제 모습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지은이는 먼저 ‘사회주의 도시’란 개념을 풀이한다. 토지의 개인 사유가 주된 세금 수입원이 되는 자본주의 도시에서는, 세금을 써야 하는 공공영역은 최소화하고 세금을 매길 수 있는 사유지는 최대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때문에 공공영역이나 녹지공간을 무시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이에 대해 토지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도시는, 대도시화를 지양하고 도시재개발에 반대하며 도시와 농촌 지역의 융화를 꾀한다. 또 체계적인 도시계획에 의존하며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받는다. 여기서 나타나는 사회주의 도시만의 특징은, ‘생산의 도시’, ‘녹지의 도시’, ‘상징의 도시’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 도시는 도시 안에 생산시설을 배치하고 농업용지 등을 기반으로 한 녹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도시의 팽창을 막고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를 줄이려 한다. 여기에 도시를 다핵화하고 체제 선전에 필요한 광장이나 기념탑 등의 상징적 공간들이 결합된다. 평양은 이러한 사회주의 도시 개념이 충실히 반영된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로 평가받았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평양은 한국전쟁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수도 평양을 포기하지 않고 폐허 위에 도시를 재건하기로 결정했다. 1951년과 1953년 두 차례에 걸쳐 젊은 건축가 김정희가 만들어낸 마스터플랜이 그 기틀이 됐다. 1970년대까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체제 안정화를 구가하면서, 이 마스터플랜은 충실하게 현실의 평양 속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지은이는 이런 맥락을 고려해, 현재 평양의 모습을 이념적 편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양에 자리잡은 상징적인 광장은 그저 북한 독재정권의 욕망이 빚어낸 공간이 아니라, 사회주의 도시론에 입각한 공간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주거와 공장이 맞붙어 열악해 보이는 주거환경은 도시의 슬럼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 생산시설을 갖추고자 했던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이 반영된 것이란 풀이다. 그러나 현재의 평양에 대한 분석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앞으로 닥칠 평양의 변화가 지은이의 주된 관심사다. 1980년대 경제 상황이 나빠진 뒤 변화의 시험대에 올라서 있는 북한의 상황을 고려하면, 수도 평양은 체제 변화의 주된 실험대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새로운 도시 조직이 기존 조직을 대체하기보다는, 새로운 요소가 하나하나 더해져서 전체 도시의 모습과 형태를 바꾼다는 ‘인티그럴 어바니즘’ 개념을 제시한다. 곧 이미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로 건설된 평양이 어떻게 변화해갈 것이냐는, 어떤 ‘촉진제’가 도입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이에 따라 인민대학습당이 호텔이나 박물관으로 변화할 가능성, 김일성광장의 지하 공간 개발의 가능성 등을 예측해보기도 한다. 결국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평양이 시장경제 체제의 영향을 받아 변하더라도, 기존 자본주의 도시 조직과 똑같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인 생산, 상징, 녹지의 공간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도시에서 나타나는 도시화 문제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본화 과정으로 이행할 때 적절한 변형만 거친다면, 시장경제 원리를 흡수하면서도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예방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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