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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중·일 ‘옛 기행문학 삼국지’…정신사도 담은 ‘패키지 여행’

등록 2011-06-24 20:49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심경호 지음/고려대학교출판부·2만3000원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심경호 지음/고려대학교출판부·2만3000원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부터 바쇼의 ‘오쿠노호소미치’까지
근세 이전 여행기 20여편 통해 당시 지식인의 정신세계 체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같은 ‘기행문학’ 작품들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 사랑을 받아왔다. 여행이 친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낯선 존재를 만나는 일이며 여행에 대한 기록은 기존 지식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고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 여행은 고행이었다. 우리 말에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있고, 서양에도 ‘여행’(travel)은 ‘고생, 수고’(travail)라는 라틴어를 그 어원으로 삼을 정도다. 여행의 수고로움을 어느 정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경험했던 옛사람들의 고전 기행문학은 이런 여행의 본질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은 동아시아의 기행문학 작품들을 골라서 소개하고 풀이해주는 책이다. 왕성한 저술 활동을 통해 한문 고전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해 온 지은이 심경호 고려대 교수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최부의 <표해록> 등에서부터 중국 육유의 <입촉기>, 일본 바쇼의 <오쿠노호소미치> 등 근세 이전 한국·중국·일본의 여행기록 20여 편을 골라서 실었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작품들은 작품마다 여행의 동기나 목적, 여행한 지역, 여행 과정 등이 모두 천차만별이다. 여행 동기만 봐도, 8~9세기 구도자였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처럼 본격적인 구도·순례가 있는가 하면, 위대한 문인으로 꼽히는 김시습의 <사유록>이나 마쓰오 바쇼의 <오쿠노호소미치>처럼 순수한 자유와 방랑도 있다.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행 기록을 남기는 경우도 많다. 김경문이 구술하고 홍세태가 쓴 <유백두산기>에는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관원들이 백두산에서 국경을 정하고 정계비를 세우는 과정이 나온다. 신유한의 <해유록>,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등은 조선 시대 때 일본으로 갔던 통신사 행차를 계기로 나온 기행문학이다.

혜초를 비롯한 수많은 동아시아의 순례자들이 지나간 실크로드의 중심지 돈황 막고굴.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옛날, 다른 세상을 보고 돌아온 이들의 기행문학은 많은 이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중요한 텍스트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혜초를 비롯한 수많은 동아시아의 순례자들이 지나간 실크로드의 중심지 돈황 막고굴.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옛날, 다른 세상을 보고 돌아온 이들의 기행문학은 많은 이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중요한 텍스트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은이는 작품별로 지은이와 시대적 배경, 여행의 실질적 과정과 의미 등을 설명하면서 동아시아 역사와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이를테면 <왕오천축국전>으로부터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밀교가 동아시아 불교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신라의 승려로 당나라로 건너간 혜초가 밀교를 통한 중국 불교 발전에 어떤 구실을 했는지 등을 설명한다. 또 17~18세기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조선인들이 당시 일본의 부국강병한 모습이나 색다른 문화에 관심을 가졌지만, 문화적 우월감에 빠져 일본의 실질적인 변화를 집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단순한 사실 전달만이 아니다. 지은이는 여행길에 나선 지식인들의 정신세계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설명을 한다. 18세기 사절단의 일원으로 청나라 지배 아래의 요동과 연경, 열하를 여행했던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는 “빛깔을 논하면서 마음에 먼저 색깔을 정해 놓는 것은 올바로 보는 것이 아니”라며 상대주의적인 시각으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박지원의 앞선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옛사람들은 자신이 여행을 떠나지 못할 때 남이 지은 시문을 읽거나 남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방 안에서 감상하는 ‘와유’(臥遊)를 즐겼다고 한다. 지은이는 책머리에서 “근세 이전의 동아시아 지식인들인 남긴 여행 기록을 통해 그들이 세계의 관념을 어떻게 확장시켜 나왔는지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여행을 풍부한 체험여행이 될 수 있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고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또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공간을 벗어나서 드넓은 세계의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했던 자유 의식을 반추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동아시아 기행문학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빼곡하게 늘어놓은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와유’의 좋은 재료라 할 수 있다. ‘갈 수 없는 여행’의 공간적 제약뿐 아니라 근세 이전과 오늘날 사이에 있는 시간의 벽까지 넘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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