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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모든 이에 ‘기본소득’ 줘야 체제가 안정된다”

등록 2011-07-05 20:27

<자본주의, 어떻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나>
<자본주의, 어떻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나>
공리주의에 빠진 주류-비주류 경제학 비판
“생산력 취약층 희생시킬수록 불안정성 심화”
가치론에 근거한 ‘노동 이데올로기’ 깨뜨려
‘자본주의, 어떻게…’ 펴낸 전병권 박사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자본가의 구호이면서도 노동자의 구호였다. 자본가가 내세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노동자는 오히려 불로소득을 공격하며 자본가에게 되돌렸다. 어느 쪽이든 ‘일하는 것’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이 원칙은 노동을 가치의 참된 척도로 보는 ‘노동가치론’(가치론)에서 비롯됐다. 가치론은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가장 강력한 틀이지만, 자본주의의 본질을 화폐를 매개로 하는 지배관계에서 찾는 ‘화폐론’과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몇년 전 국내에 ‘인지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한 경제학자 전병권(사진) 박사가 최근 써낸 <자본주의, 어떻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나>는 화폐론의 관점에서 자본주의가 우리 삶에 뿌리박게 된 문명사적 과정을 풀이한 책이다. 전 박사는 인자자본주의 연구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얀 물리에부탕의 제자로서, 비정규직 대학강사이자 프랑스 콩피에뉴공과대학(UTC) 코테크(Cotech)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서강대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의장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 벨기에 루뱅대 교수(왼쪽에서 다섯째) 등이 ‘기본소득 서울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진보진영의 새로운 경제적 대안 담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난해 1월 서강대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의장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 벨기에 루뱅대 교수(왼쪽에서 다섯째) 등이 ‘기본소득 서울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진보진영의 새로운 경제적 대안 담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4일 만난 전 박사는 “국내 경제학 논의는 주류 경제학이든 비주류 경제학이든 공리주의적 관점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며,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경제철학적 문제들을 던져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시장질서를 만능시하거나 인간을 근본적으로 생산력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는 점에서 기존 경제학 논의들이 ‘공공의 이익에 개인의 행동이 얼마나 공헌했느냐’를 따지는 공리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경제철학 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거칠게나마 경제철학적 논점을 제기하려 했다고 한다. 화폐론을 중심으로 삼은 그의 자본주의 논의는, 인지자본주의라는 조금 생소한 관점을 거쳐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경제학자 전병권 박사
경제학자 전병권 박사
책 속에서 인지자본주의 논의를 본격적으로 이끌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주된 관점은 인지자본주의 연구에 기대고 있다. 아직까지 ‘가설’로서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인지자본주의 연구는, 상품에 의한 상품 생산체계인 산업자본주의가 지식에 의한 지식 생산체계인 인지자본주의로 전환됐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정보통신 업체가 자사 소프트웨어 제품을 무상으로 유통시키다가 소비자가 늘어나면 유상으로 전환해 이윤을 추구하듯, 인간의 노동이 아닌 인식을 기반으로 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생산양식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지자본주의는 공장에서 이뤄지는 임금노동 관계만을 착취 대상으로 삼았던 산업자본주의와 달리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차원에서 개인의 지성과 심신, 곧 삶 전체를 착취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 박사는 자본주의를 “특정 생산양식에 근거한 정태적 체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를 확장해 온 동태적 체제”라고 정의하면서, 자신의 자본주의 문명 풀이가 인지자본주의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놓았다. 그는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을 “인간의 이윤 추구를 종교적으로 인정받은 과정”이라고 풀이하며, 화폐의 의미를 중요하게 따진다. 화폐는 위계적 권력질서로서 사회를 ‘통합’하지만, ‘희생’을 내재한다. 예컨대 교환되지 않는 재화를 소유한 자는 도산을, 교환되지 않는 노동을 소유한 자는 생존권의 위협을 겪어야 한다.

이런 화폐의 지배관계에 자발적으로 복종해 사적 욕망을 추구하게 된 근대적 개인들은, 공리주의적인 규율을 받아들이고 서양 문명의 유일신교 신앙에 따라 자본주의를 신앙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 전 박사의 풀이다. 자본주의의 탄생과 형성이 일정한 생산양식에 따른 시장질서의 출현 때문이라고만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오늘날 현실에 주어진 조건으로서 인지자본주의의 가설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전 박사는 “자본주의는 분배의 시스템이 없는 불안정한 체제”라며 “이 체제 안에서든 밖에서든 어떻게 하면 안정된 삶을 구현할 수 있는지가 나의 주된 연구 과제”라고 말했다. 그가 가치론에 근거한 생산력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을 해야만 소득을 번다는 ‘노동 이데올로기’를 깨뜨리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생산력이 취약하거나 없는 사람이나 기업을 무가치한 존재로 낙인찍어 희생자로 제거해나가다 보면, 체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극심해진다. 전 박사는 “차라리 생산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체제의 안정성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론은 “인지자본주의 연구에서도 이미 강력한 대안으로 제시된 바 있다”고 한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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