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한국에 ‘희망버스’ 있다면
미국엔 ‘데모크라시 나우!’

등록 2011-07-15 20:45

지난 6월11일 제1차 ‘희망버스’로 부산을 찾은 시민들이 한진중공업의 무차별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러 가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지난 6월11일 제1차 ‘희망버스’로 부산을 찾은 시민들이 한진중공업의 무차별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러 가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미국서 펼쳐진 저항의 기록들
전쟁·국가 파시즘·인종차별…
불의에 맞선 운동의 힘 보여줘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
에이미 굿맨, 데이비드 굿맨 지음·노시내 옮김/마티·1만3500원

이라크 출신인 건축가이자 반전활동가인 자란 라에드 자라르는 2006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그해 8월 오클랜드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뉴욕 존에프케네디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던 그는 항공사와 공항직원들에 의해 갑자기 탑승을 제지당했다. 단지 아랍어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티셔츠 위의 아랍어는 나치에 맞선 저항정신을 대표하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문구였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자라르는 완강한 직원들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뉴욕’이라고 쓰인 티셔츠로 갈아입어야 했고, 감시의 눈길 속에 굴욕적으로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미친 일’이라며 고개를 흔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미친 일들이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는 제목 그대로 ‘미친 세상’을 그대로 참아내지 않고 ‘운동’을 통해 맞서 싸운 ‘보통 사람들’에 대한 취재기록이다.

지은이 에이미 굿맨은 1996년 미국에서 설립돼 전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영리 독립언론으로 떠오른 방송사 <데모크라시 나우!>의 창립자 겸 진행자다. 또다른 지은이이자 에이미 굿맨의 동생인 데이비드 굿맨 역시 독립 언론인이다. <데모크라시 나우!>는 사적 이익에 종속되거나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격한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광고나 기업의 후원, 협찬을 일체 받지 않고 공공재정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이 방송은 이익에 매몰된 주류 매체들이 다루지 않는 사회 이슈들과 풀뿌리 활동가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도해 ‘대안 언론’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책에서는 미국에서 펼쳐진 여덟가지 저항의 기록들을 옮겨놨다. 전쟁, 국가 파시즘, 인종차별, 정부와 대기업의 커넥션 등 하나같이 미국의 예민한 현실을 반영하는 사건들이다. 주로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0년대에 일어난 사건들이기도 하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애국법’을 앞세워 코네티컷도서관연합회에 테러 방지를 위해 모든 개인 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요구받은 사실을 제3자에게 누설하면 안 된다는 ‘함구령’까지 붙여서. ‘비밀경찰’과 다름없는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해 도서관 사서들은 국가에 대한 소송으로 맞섰다. 패소를 염려한 정부가 결국 함구령을 해제하는 정도로 사건이 봉합됐지만, 사서들의 저항을 통해 애국법의 불합리함이 만천하에 알려질 수 있었다.

학교에서 상연을 금지당했지만 이에 저항해 미국 전역을 감동시킨 윌튼고등학생들의 전쟁 반대 연극 <갈등의 목소리> 장면.  마티출판사 제공
학교에서 상연을 금지당했지만 이에 저항해 미국 전역을 감동시킨 윌튼고등학생들의 전쟁 반대 연극 <갈등의 목소리> 장면. 마티출판사 제공
뉴올리언스의 흑인들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인 카트리나 허리케인에 삶의 기반을 모두 잃은 뒤에도, 정부의 무관심과 돈벌이 재건사업에 희생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이들은 ‘커먼 그라운드’라는 풀뿌리 연대기구를 조직해, 스스로 생필품을 조달하고 집을 만드는 등 삶의 기반을 다지는 데 나섰다.

저항의 주체는 어디에나 있다. 전쟁을 반대하는 내용의 연극을 준비하던 코네티컷주 윌튼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쪽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연극 상연을 금지하자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는 등 적극적인 저항에 나섰다. 공연 예술가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지지하고 나섰고,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전달하는 이들의 연극은 전국에서 상연돼 관중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군인의 신분으로 이라크 전쟁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사람들과, 관타나모와 같은 미국 수용소에서 심리학이 고문에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심리전문가들도 있다.


지은이들은 이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가나 명망가가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또 이들은 ‘운동’을 통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랍어 티셔츠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던 자라르는 <데모크라시 나우!>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말했고, 이에 분노한 사람들은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단체로 자라르가 탔던 비행기를 타는 등 집단적 저항에 나섰다. 불의에 대한 분노가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은이들은 “한 명으로 시작했어도 결국 여럿이 되는 것이 바로 운동”이며 “우리가 기다리던 지도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역설한다.

미국 ‘애국법’에 담겨 있는 함구령 조항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정부와 소송을 벌인 코네티컷도서관연합회 사서들의 활약을 그린 만평. 마티출판사 제공
미국 ‘애국법’에 담겨 있는 함구령 조항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정부와 소송을 벌인 코네티컷도서관연합회 사서들의 활약을 그린 만평. 마티출판사 제공
책을 읽다 보면 미국과 다르지만 또 하나의 ‘미친 세상’인 우리의 현실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었다는 이유로 한 예술가가 갑자기 공안사범이 되어버린, 이른바 ‘쥐벽서’ 사건, 정부 산하기관 소속 연구원으로 4대강 정비사업이 대운하 사업과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폭로한 김이태 연구원 등이 머리를 스친다. 그래도 지은이들이 말했던 저항과 운동이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 희망을 걸 수 있으니 다행이다. 한진중공업의 무차별 정리해고에 분노하고 200일 가깝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씨와 연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탔던 버스의 이름이 바로 ‘희망버스’ 아니던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