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린 홍콩에서 대대적인 반세계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속 강기갑 민주노동당 전 대표 주변에 있는 집회 참가자들이 머리에 쓰거나 목에 두른 녹색 모자와 녹색 스카프는 세계적 농민단체인 ‘비아캄페시나’의 상징이다. 한티재 제공
국제농민단체 비아캄페시나
“국가별 생산적 다양성 존중
인간과 자연 조화 회복해야”
지역 종자은행 등 대안 제시
“국가별 생산적 다양성 존중
인간과 자연 조화 회복해야”
지역 종자은행 등 대안 제시
비아캄페시나-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
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지음·박신규 등 옮김
/한티재·2만원 2003년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던 멕시코 칸쿤에서 한국의 농민운동가인 이경해 전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회장은 “더블유티오가 농민들을 다 죽인다. 더블유티오 협상에서 농업을 제외하라”고 외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넘실대는 세계화 ‘모의’의 장마다, 많은 사람들이 쫓아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주목받는 사람들은 바로 고 이경해씨와 같은 농민들이었다. 카를 마르크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근대화·산업화가 심화될수록 농민, 특히 소농들은 점차 사라져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오늘날 농민들은 각종 자유무역협정 무대에서 날카로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등,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는커녕 스스로의 존재감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국제적인 대안 농민단체인 ‘비아캄페시나’의 급진적이고 활발한 활동은 바로 그 증거다. 비아캄페시나란 스페인어로 ‘농민의 길’이라는 뜻이다.
<비아캄페시나-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의 지은이인 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는 스스로 14년 동안 농사를 지었고, 1993년 이 단체가 만들어질 때부터 이 운동에 직접 참여해온 당사자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초로 한 이 책은 비아캄페시나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의미, 실천 내용들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지은이는 “농업의 근대화는 우리가 식량과 농업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놨다”며 비아캄페시나의 근본적인 탄생 배경을 농업의 근대화에서 찾는다. 농업이 근대화하면서 생산은 점점 더 소비로부터 멀어졌고, 기업들의 농업에 대한 개입이 커지면서 생산을 결정했던 농부들의 자율성은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근대화는 세계화로 이어진다. 대부분 공산품과 산업용 생산재에만 적용됐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점차 농업 분야로 확대됐고,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계기로 탄생한 세계무역기구는 전면적인 농업의 세계화 시대를 열었다.
농업의 근대화·세계화는 결국 소수의 다국적기업들이 세계 농업 무역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컨대 전세계 밀, 옥수수, 커피, 파인애플 거래의 90%와 바나나와 쌀 시장의 70%를 소수의 다국적기업이 지배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단지 다섯개의 기업이 세계 곡물거래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생산에 따른 이윤이 급격히 하락한 농민들은 점차 땅 밖으로 내몰리게 됐다. 1997년 이후로 2만5000여명의 인도 농민들이 농업생산량 증대를 위해 만들어진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통계도 있다. 또 지역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오던 공동체들은 파괴되고 자연은 극도의 착취에 내몰리게 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적 농경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풀이다. 전세계 각지의 농민운동은 세계화의 위협에 대항해 서로 연대를 조직하기 시작했고, 1992년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서 열린 ‘전국농민연합’ 국제대회를 계기로 1993년에 비아캄페시나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됐다. 남아메리카의 무토지농민운동(MST), 아시아의 필리핀농민운동(KMP) 등 전세계 5개 권역의 농민운동단체들이 함께 뭉쳤고, 그 뒤로 끊임없이 세계무역기구가 대변하는 세계화의 흐름에 저항하며 그 조직을 확대해왔다. 한국의 대표적 농민단체들인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도 2004년 정식 회원으로 가입해, 지금은 주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계화 흐름에 점차 순응해간 비정부기구(NGO)운동의 한계를 딛고, 농민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당사자 운동이 스스로 성장해왔다는 사실이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이다. 반세계화운동가인 월든 벨로는 “비아캄페시나는 오늘날 역사의 주체가 되기를 원하는 민중들의 운동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이라고 평가한다.
비아캄페시나가 추구하는 대안적 농업모델의 핵심개념은 바로 ‘식량주권’이다. 처음에는 “각 국가들이 문화적·생산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기본적인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로 규정됐던 이 개념은, 그 뒤 “민중이 자신의 농업 및 먹을거리 정책을 규정할 권리”로까지 확장됐다. 무엇보다 상품이 아닌 먹을거리로서의 식량의 의미를 강조하고, 이에 대한 농민의 자주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식량주권의 기치 아래, 비아캄페시나는 소규모 농업협동조합, 지역 종자은행, 공정무역 벤처 등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이 과정은 또한 근대화·세계화가 낱낱이 끊어놨던 지역과 공동체, 인간과 자연 생태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비아캄페시나는 단지 소농들의 권리 보장 운동이 아니라 전체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는 초국적인 민중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지음·박신규 등 옮김
/한티재·2만원 2003년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던 멕시코 칸쿤에서 한국의 농민운동가인 이경해 전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회장은 “더블유티오가 농민들을 다 죽인다. 더블유티오 협상에서 농업을 제외하라”고 외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넘실대는 세계화 ‘모의’의 장마다, 많은 사람들이 쫓아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주목받는 사람들은 바로 고 이경해씨와 같은 농민들이었다. 카를 마르크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근대화·산업화가 심화될수록 농민, 특히 소농들은 점차 사라져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오늘날 농민들은 각종 자유무역협정 무대에서 날카로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등,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는커녕 스스로의 존재감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국제적인 대안 농민단체인 ‘비아캄페시나’의 급진적이고 활발한 활동은 바로 그 증거다. 비아캄페시나란 스페인어로 ‘농민의 길’이라는 뜻이다.
이런 식량주권의 기치 아래, 비아캄페시나는 소규모 농업협동조합, 지역 종자은행, 공정무역 벤처 등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이 과정은 또한 근대화·세계화가 낱낱이 끊어놨던 지역과 공동체, 인간과 자연 생태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비아캄페시나는 단지 소농들의 권리 보장 운동이 아니라 전체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는 초국적인 민중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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