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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의 고질병 ‘사회적 무시’…그 치료법은?

등록 2011-08-26 21:09

지난 2008년 8월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앞에서 대규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차벽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문제를 발단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장악한 엘리트들에게 ‘무시’당한 대중들이 ‘주권적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벌였던 인정투쟁으로도 풀이된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2008년 8월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앞에서 대규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차벽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문제를 발단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장악한 엘리트들에게 ‘무시’당한 대중들이 ‘주권적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벌였던 인정투쟁으로도 풀이된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호네트 ‘인정투쟁’ 개정증보판
사랑·권리·연대 세가지 축으로
사회적 갈등구조에 해법 제시
“분배제도 등으로 구체화 필요”
〈인정투쟁-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
악셀 호네트 지음·문성훈·이현재 옮김/사월의책·2만3000원

인간 사회에서 결코 끊이지 않는 사회적 투쟁들은 과연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근대 서구 사회철학은 사회적 삶이 근본적으로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관계라고 규정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규정한 토머스 홉스가 대표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과 사회를 ‘좋은 삶’을 추구하는 정치적 공동체로 파악했으나, 근대 철학은 이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개별적 원자로서 인간의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을 중시한 것이다.

사회적 투쟁의 핵심 배경이 ‘자기보존’보다도 ‘인정’이라고 분석한 <인정투쟁>은 이런 기존 관점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대시킨 획기적 저작으로 꼽힌다. 지은이 악셀 호네트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하버마스에 이어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대표하는 3세대 이론가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산실인 독일 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사회철학자다. 1992년 나온 이 책은 90년대 국내에 번역 소개됐으나 절판됐다가 이번에 2003년 판본을 번역한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국내에 소개됐다.


<인정투쟁>의 핵심적인 명제는, “사회적 투쟁은 상호인정이라는 상호주관적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주장으로 압축된다. 호네트의 인정이론은 예나대학 시절 청년 게오르크 헤겔의 철학적 사유와 사회심리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의 경험과학적 분석으로부터 비롯됐다. 청년 헤겔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사회화 과정 속에서 중요한 조건이 된다고 봤다. 미드는 개인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목적격 나’와 ‘주격 나’ 사이의 마찰에 주목했다.

이들의 철학과 이론을 종합한 호네트는, ‘인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자 긍정적인 자기의식을 가지게 하는 심리적 조건이라고 봤다.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들은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인정해주는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 사랑·권리·연대 등 세가지 층위에서 이런 사회적 인정질서를 풀이할 수 있다고 한다.

인정투쟁 이론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투쟁이 주로 물질적 영역에서의 ‘자기보존’을 위한 생존경쟁에서 비롯된다는 기존 관점을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집중했던 기존의 사회철학들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을 단지 생존 유지를 위한 것으로 다루는 데 그쳤다면, 호네트의 인정이론은 ‘행복한 삶,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해 자신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사회로부터 인정받으려 투쟁하는 인간의 총체적 모습을 불러낸다.

만약 개인 또는 집단이 자기 정체성을 타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모욕’을 당할 경우엔 어떨까? 호네트에 따르면, 인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자 각 개인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의식을 가지게 하는 심리적 조건이다.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 되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폭동이나 봉기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분출되는 사회적 인정투쟁에는 모두 이런 도덕적 분노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인정투쟁 이론은 특히 급격히 변화하는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풀이하고 해결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를 계기로 터져나온 촛불집회에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치 엘리트의 권력 장악 수단으로 변질된 데 맞서 ‘주권적 존재’로서 인정받으려는 대중들의 욕구가 있었다. 차별 철폐와 고용 보장을 부르짖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사회적 존재로서 제대로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이 들어 있다.

단지 ‘생산과 분배’의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풀어낼 수 없는 사회적 갈등들에 대해, 인정투쟁 이론은 좀더 폭넓고 세심한 접근법을 제시해줄 수 있다.

호네트의 제자이자 이 책을 옮긴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는 “특히 한국 사회는 ‘사회적 무시’라는 독특한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며 한국 사회에 인정투쟁 이론이 좀더 폭넓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는 명문대를 가지 못해서, 장애인이라서, 못생겨서, 여자라서, 외국인 노동자라서, 노동자라서 등등 수없이 많은 이유로 타인을 무시하는 병리적 현상이 있는데, 인정투쟁 이론은 이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에 적합한 틀이라는 것이다.

인정투쟁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정치적 민주화나 경제적 정의 등 구체적인 분배 정의에 대한 요구를 약화시킨다는 반론도 있다. 문 교수는 “인정투쟁 이론이 분배 정의 문제를 부정하거나 뛰어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인정은 권리나 제도, 사회적 연대를 통해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 호네트와 낸시 프레이저가 벌인 논쟁을 담은 <분배인가 인정인가?> 등이 ‘악셀 호네트 선집’으로 계속 나올 예정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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