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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통제된 노동의 이동 ‘다문화주의 불편한 진실’

등록 2011-09-13 20:27

지난해 추석을 맞아 자신이 빚은 송편을 자랑하고 있는 이주여성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되면 국내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여러 ‘다문화’ 행사가  열리는데, 송편 빚기나 떡국 만들기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우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해 추석을 맞아 자신이 빚은 송편을 자랑하고 있는 이주여성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되면 국내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여러 ‘다문화’ 행사가 열리는데, 송편 빚기나 떡국 만들기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우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오늘의 문예비평’ 특집
차이 존중-미등록 이주노동자 가혹한 단속 공존
‘이방인’ 딱지 전제된 다문화 “제한·특권 없어야”
오늘날 ‘다문화주의’는 전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가치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강력한 담론이다. 국내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명절 때 모국의 문화를 소개하며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것도, 소녀시대나 동방신기와 같은 한국 가수들이 유럽에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도 다문화주의의 힘이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반인권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가혹한 단속과 추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 또한 ‘다문화 사회’ 속의 현실이기도 하다.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은 ‘다문화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가을호 특집 주제로 삼았다. 그동안 다문화주의에 대한 경계와 비판은 여러 영역에서 단편적으로 제기된 바 있지만, 이번 특집은 철학과 담론의 차원에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본격적 비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알랭 바디우
알랭 바디우
첫머리에서 편집진은 “다문화주의 문화 담론을 견인할 철학적 인식이 부재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다문화주의가 몸집을 불려왔지만, 그 철학적·사회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성찰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의 중심엔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급진적인 철학자로 꼽히는 알랭 바디우(작은 사진)가 있다. 바디우를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해왔던 서용순 박사는 ‘‘하나의 세계’와 다문화 상황의 진실’이라는 글에서 다문화주의의 철학적 의미를 따져물었다.

바디우의 논의를 참조한 그는 “특수한 것의 존중을 강조하는 다문화주의란 화폐만을 통해 보편화되는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문화주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적나라한 비판을 던진다. 바디우는 자본은 ‘하나의 세계’가 된 세계 시장을 장벽 없이 순환하게 됐는데, 한편으론 무엇이든 같은 값으로 만들(‘등가화’) 수 있는 화폐의 위력을 살리기 위해 많은 ‘차이’를 필요로 한다고 봤다. 곧 ‘하나의 세계’ 속에서도 다양한 차이가 있어야 화폐의 위력을 통한 자본의 자기 유지가 가능한데, 다문화주의는 이것을 위한 장치라는 주장이다.

서 박사는 상품과 화폐는 자유롭게 순환하지만 노동의 이동은 철저히 통제당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런 현실은 풍요로운 ‘하나의 세계’ 밖에, 상품과 화폐로부터 유리되어 빈곤과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한다.

결국 다문화주의를 내세운 하나의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자, 시장주의자, 재산가, 가진 자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 등만을 포함시켜주는 닫힌 세계일 뿐이라는 비판이다. 때문에 이방인에 대한 무자비한 통제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 다문화주의는 언제나 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형준 부산외대 강사 역시 바디우의 논의를 빌려서 다문화주의의 정치적 의미를 짚었다. 그는 다문화주의가 ‘시민성’을 구축하기 위한 서양의 자유주의적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본다. 곧 정치가 문화로, ‘정체성’이 ‘차이에 대한 존중’으로 바뀌긴 했지만,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주느냐 마느냐를 판별하는 구조는 똑같다는 것이다. 다문화를 수용하기 위해선, 경계를 넘어서 들어오는 입국자들을 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이민자, 탈북자 등으로 분류하고, 이들 전부에게 ‘이방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박 강사는 “차이들에 대한 존중은, 그 차이들이 그러한 정체성(대부분은 서양의 정체성)에 제법 동질적인 경우에만 한해서 적용된다”며, 서 박사와 마찬가지로 다문화주의에 담긴 ‘관용’이란 이름의 폭력성을 까발린다.

그렇다면 다문화주의에 대한 바디우의 대답은 무엇인가? 박 강사는 바디우 철학의 핵심 개념인 ‘보편적 개별성’을 언급하며, “주체의 정체성을 새롭게 부과하거나 전도시키지 않는, ‘어떤 제한도 특권도 없는’ 수용만이 ‘절대적 환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바디우는 어떤 정체성에 매달리는 개별성은 다른 개별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편화될 수 없다고 봤다. 따라서 이주민들의 모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이에 대해 관용과 통합을 말하지 말고, “통합의 신념과 동화의 속도를 지연시키고, 혼종된 현실의 착종 상태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용순 박사는 1996년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미등록 이주민들의 성당 점거 사건을 사례로 제시하며, ‘이방인’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다.

바디우는 이 투쟁에 대해 “결정 불가능한 것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정치적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이방인은 모호하기 때문에 결정 불가능한 존재인데, 정치적 투쟁을 통해서 자신들의 가치를 직접 선언하고 확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화폐론적 법칙에 따르는 ‘하나의 세계’나, 차이에 대한 강조가 아니다. 흑인이건 백인이건 남성이건 여성이건 ‘모든 존재가 실제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실존에 대한 긍정이라고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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