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우태영 옮김/다른세상·2만2000원
자아폭발-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우태영 옮김/다른세상·2만2000원
우리는 흔히 선사시대 사람들이 괴롭고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취로 먹고살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1주일에 단지 12~20시간 정도만 식량을 찾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현대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뿐만 아니라 이 당시에는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으로 지적되는 전쟁, 가부장제, 사회불평등 등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영국의 심리학자인 스티브 테일러가 쓴 <자아폭발-타락>은 왜 현대 인간이 평온했던 선사시대의 삶에서 벗어나 ‘정신이상’에 가까울 정도로 전쟁과 남성 지배, 사회적 불평등이 넘쳐나는 삶 속으로 들어왔는지 파헤치는 책이다. 지은이는 고고학과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발견된 사실들을 넘나들며 인류 역사의 흐름을 다시 정리하고, “인류는 진보해온 것이 아니라, ‘자아폭발’을 계기로 퇴보해왔다”고 주장한다.
지은이가 쓰는 ‘자아폭발’이라는 말은 자아의식이 폭발적으로 크게 팽창해 과도하게 발달한 현상을 가리킨다. 인류가 퇴보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타락’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인류에게는 ‘과도하게 발달된 자아’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 환경이나 집단들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정신을 지니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영위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원전 4000년께가 되어서야 비로소 항시적인 전쟁, 대규모 사회적 억압, 남성 지배 같은 사회적 폭력이 고질화됐다고 한다.
그 배경으로는 자연환경의 변화를 지목한다. 기원전 4000년 이전까지 수분이 많아 비옥했던 ‘사하라시아’(북아프리카에서 중동,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땅) 지역에서 살던 인류의 조상들은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말라 버리면서 대규모 이주가 시작됐고, 환경의 적대적인 변화 속에서 인류는 개인성이 과도하게 발달되는 ‘자아폭발’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모성을 선호하던 성향은 부성을 선호하는 성향으로 바뀌었고, 기술문명은 발달했지만 인류의 삶은 전쟁과 지배, 사회적 불평등, 내면의 불안 등으로 가득차게 됐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은이는 오늘날 인류가 처한 심각한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이처럼 타락해온 인류 역사를 반성적으로 인식하고 초월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이나 폭력, 지배, 사회적 불평등은 인류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악’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제시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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