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의 시베리아 동부 울란우데 외곽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탄생에 사실상 ‘아버지’와 같은 구실을 했던 러시아(옛 소련)는 여전히 남북관계 해결에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적인 존재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종수 교수 ‘21세기…’ 출간
외교이론·실무 무장 ‘러시아통’
통일 관점서 북-러 관계 조명
“러 중재 없인 북핵 해결 안돼
북 경제회복 열쇠도 쥐고있어”
외교이론·실무 무장 ‘러시아통’
통일 관점서 북-러 관계 조명
“러 중재 없인 북핵 해결 안돼
북 경제회복 열쇠도 쥐고있어”
지난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9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했다. 또 북한의 핵실험으로 2009년 중단됐던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공동위원회가 다시 열리며 가스관 연결 등 남·북·러 사이의 3각협력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항미원조’를 앞세운 중국과 북한의 긴밀한 관계에만 주목했지만, 사실상 러시아야말로 미국과 함께 남북한 분단의 책임과 통일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요 주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북-러 관계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초빙교수(경제학)로 재직중인 박종수 교수(사진)가 쓴 <21세기의 북한과 러시아-신화, 비화 그리고 진화>는 남북통일의 관점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조명한 책이다. 1980년대부터 러시아 연구에 뛰어들었던 박 교수는 주러시아대사관에서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활약하는 등 러시아에 대해 이론과 실무를 모두 다뤄본 ‘러시아통’으로 꼽힌다.
10일 만난 박 교수는 “남북관계에 대한 핵심 열쇠는 러시아가 쥐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미국 중심주의에 갇혀 러시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 책을 쓴 이유도 정책 입안자들로 하여금 러시아를 보는 시각을 좀더 근본적으로 성찰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우방으로 중국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옛 소련이야말로 북한 정권을 만든 ‘아버지’로서 그들의 공생관계는 여전히 끈끈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유럽의 재편을 논의한 빈(비엔나) 회의를 사실상 주도했을 정도로 전통적인 외교 강국이다.
2000년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에서도 러시아는 가장 먼저 북한의 핵 포기와 안보 보장, 경제 지원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일괄타결안’을 제시했으며, 이는 6자회담이 열리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그런데도 우리는 러시아의 대북, 대한반도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왔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연평도 포격사건 때 러시아가 북한을 비난한 것을 두고 ‘우리 쪽의 외교적 노력에 따른 성과’로 오판한 것이라 했다. 당시 정부는 러시아가 우리 편으로 돌아섰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 러시아는 서해안에서의 한-미 합동 사격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제안했다. 이는 러시아와 북한의 오랜 관계를 알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행보라 한다. 때문에 박 교수는 “한반도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서 중국 역시 러시아의 결정을 참고하고 따라가는 등 실질적인 주도자는 러시아”라며 “러시아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러시아가 애초 북핵에 대해 ‘일괄타결안’을 제시했던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한다. 러시아는 북한이 핵개발을 얼마나 절실한 문제로 보는지 알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지 않으면 북한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것.
박 교수는 “러시아 지원 없는 북핵 프로그램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러시아 중재 없는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러시아와 북한이 다시 가까워지는 최근의 정세를 두고 ‘신북방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동안 견고해 보였던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흔들리고,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러시아가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박 교수는 묻는다. “북한 전체 교역량 가운데 중국과의 교역이 70%나 차지하는데, 북한의 경제는 왜 살아나지 않는가?” 북한 곳곳에 잠들어 있는 70~80여개의 중공업 생산시설이 그 답이라고 한다. 1차 소비재 교역이 대부분인 중국과의 교역으로는 중공업 시설을 다시 깨울 수가 없다는 것. 애초 소련의 기술과 자본이 만들어줬던 시설들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열쇠, 곧 북한 경제 회복의 열쇠는 러시아가 쥐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여름 열린 북-러 정상회담을 두고 박 교수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승인과 북한이 러시아에 지고 있는 80억달러 규모의 대외채무 탕감 문제에 대한 이면합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뒤 활발해진 가스관·철도 연결 등의 논의는 이런 흐름 위에 있다는 것.
박 교수는 가스관·철도 등을 계기로 남·북·러 3자 경제협력이 이뤄진다면, 한반도 평화구축으로 나아갈 또다른 계기가 열린다고 봤다. 그는 “러시아는 미국·중국·일본과 다르게 남북통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나라”라며 “러시아에 대해 더 많은 연구와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박 교수는 “러시아 지원 없는 북핵 프로그램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러시아 중재 없는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러시아와 북한이 다시 가까워지는 최근의 정세를 두고 ‘신북방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동안 견고해 보였던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흔들리고,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러시아가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박 교수는 묻는다. “북한 전체 교역량 가운데 중국과의 교역이 70%나 차지하는데, 북한의 경제는 왜 살아나지 않는가?” 북한 곳곳에 잠들어 있는 70~80여개의 중공업 생산시설이 그 답이라고 한다. 1차 소비재 교역이 대부분인 중국과의 교역으로는 중공업 시설을 다시 깨울 수가 없다는 것. 애초 소련의 기술과 자본이 만들어줬던 시설들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열쇠, 곧 북한 경제 회복의 열쇠는 러시아가 쥐고 있다는 얘기다.
박종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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