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전남 목포어린이도서관에서 전국적 재능기부 강연 프로젝트인 ‘10월의 하늘’이 열리고 있다. 초등학생, 중학생이 대부분인 청중들이 ‘초콜릿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이라는 주제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10월의 하늘’ 및 목포어린이도서관 제공.
정재승 교수 ‘지역 도서관서 강의’ 제안
올해 의사 등 96명 43곳서 4천명에 혜택
‘테드’보다 참여·소통 쉬워 더 집단지성적
올해 의사 등 96명 43곳서 4천명에 혜택
‘테드’보다 참여·소통 쉬워 더 집단지성적
통신수단의 발달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이 촘촘해지고 있는 오늘날 ‘지식의 유통’이 화두다. 앞서가는 아이디어를 가진 유명인사가 나와 18분 동안 무료로 강연을 펼치는 장을 마련하고, 이것을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곳곳에 전파하는 비영리기구 ‘테드’(TED)는 지식 유통의 새로운 길을 보여줘 관심을 모았다. 본격적인 ‘재능기부’ 프로그램으로서 전문가와 일반 대중 사이의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전세계로부터 화려한 주목을 받는 테드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소박하지만 ‘집단지성’에 더 충실한 재능기부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 가을 정재승(왼쪽 아래사진) 카이스트 교수는 트위터에 “저와 함께 지방 도서관에서 강연 기부를 해주실 과학자 없으신가요?”라는 글을 올렸다. 대중이 접할 수 있는 과학 강연들이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만 몰려 있는 상황 속에서 과학자들이 직접 지방 도서관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강연을 펼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이 제안은 사람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결국 한달 만에 전국 29곳 도서관에서 ‘10월의 하늘’(www.nanumlectures.org)이라는 이름의 강연기부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지난 29일 ‘10월의 하늘’이 다시 열렸다. 전국 43곳 도서관에서 4000여명의 초등학생·중학생들이 96명의 강연자들과 만나는 등 지난해보다 규모가 더욱 커지고 행사 내용도 발전했다. 현지 과학자뿐 아니라 의사, 소설가, 기업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강연자로 참가했으며,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강연도 이뤄졌다. 강연 준비와 현장 진행을 돕는 준비모임에는 120여명이 참여했고, 도서관협회가 강연 장소를 제공했다. 전체 행사에 든 비용은 0원. 2년 연속 성공적으로 치러져, 앞으로 계속될 수 있는 지식 유통 및 재능기부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월의 하늘’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던 정재승 교수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테드가 호화스럽고 화려한 재능기부라면, ‘10월의 하늘’은 집단지성의 철학에 더 충실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테드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빌 게이츠, 카렌 암스트롱과 같은 유명 인사들이다. 강연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듣기 위해선 6000달러를 내야 한다. 테드 운영에 참여한 경력은 취업과 성공에 도움을 줄 정도로 가치 있는 ‘스펙’으로 인정받는다.
반면 ‘10월의 하늘’은 강연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강연을 할 수 있게끔 돕는다고 한다. 스윗사바스라는 이름의 초콜렛공방을 운영하는 김지은씨는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에 녹아 있는 과학에 대해 강연하고, 야구광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윤송이 부사장은 ‘야구의 과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자들 가운데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유명 인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충실하게 일을 해온 전문가들이라고 한다. 정 교수는 “재능기부, 곧 지식을 나누는 일은 고도의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세상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10월의 하늘’이 공유하는 철학”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 것을 남들과 나누겠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지식의 유통은 결국 소통의 의지와 맞닿아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처음 이뤄진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수화 강연,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그림책 강연 등은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다. 강연 때 마이크로소프트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도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강연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소통을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강연 장소가 지역 도서관이라는 특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 교수는 “도서관은 단지 책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지식이 모이고 나뉘는, 평생 지식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준비모임에서 총무를 맡았던 김은진씨는 “철저하게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대어 움직이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10월의 하늘’의 특징”이라며 “2년 동안 축적된 경험과 네트워크가 앞으로 더욱 발전할 발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월의 하늘’은 올해 펼쳐진 강연들을 묶어 책을 펴내고 강연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후속 작업을 추가로 벌일 계획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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