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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최장집의 민주주의론, 시민정치운동 간과했다”

등록 2011-11-22 20:16

최장집 명예교수
최장집 명예교수
정당·제도정치 한계 못봐
민주주의의 근원 가치인
‘자기통치’ 중요성도 놓쳐
사회의 정치 잠재력 봐야
기존 정당에 속해 있지 않은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시민사회 진영 후보였던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가 정당 후보들을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시민사회의 활발한 움직임이 정당 중심 정치권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계속 이어지던 때와도 비슷하다. 이에 대해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만과 혐오의 표출”이라는 분석은 공통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생각들은 엇갈린다.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승리’라고 보는 생각이 있는 반면, 우리 사회 대표적 정치학자로 꼽히는 최장집 명예교수(사진)는 이를 ‘포퓰리즘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정당체제 개혁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라는 주장이다.

지난 19일 서울 고려대에서 열린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의 사회로 종합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주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 검토와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제공
지난 19일 서울 고려대에서 열린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의 사회로 종합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주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 검토와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제공
19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은 최장집 교수의 민주주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기 위한 취지로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이란 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국 민주주의에 관한 새로운 담론과 이론적 모델, 제도적 전망을 모색하는 연구를 하는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 기획연구팀이 주도한 행사다. 그동안 최 교수의 이론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비판이 많이 나왔지만, 이번처럼 아예 토론회의 주제로 잡아 전반적인 검토를 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주의에는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이익을 정치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정당과 정당체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냉전반공체제에 근거한 보수적 정당체제를 극복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대표성과 책임성을 가진 정당체제가 갖춰지지 못해 민주주의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바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담론이다. 그의 이론은 특히 운동에만 기댈 뿐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도외시한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최 교수의 민주주의론에 대해 ‘제도정치에만 파고들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발표자들은 급진 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 생태주의, 중도주의 등 각자 나름의 틀로 접근했으나 논의가 모이는 지점은 엇비슷했다. 운동정치를 배제하고 대의제·정당정치만을 주장하는 최 교수의 민주주의론이 ‘자기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가치를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제도정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운동정치에서 발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박영균 건국대 연구교수는 “최장집 교수가 ‘현대의 민주주의는 인민의 통치가 아니라 인민의 동의에 바탕한 통치체제’라고 주장할 때, 그는 민주주의의 이상적 가치인 ‘자기 통치’를 포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승원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최 교수의 이론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정치주체들의 모습과 새로운 정치 공간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현재의 수많은 정치적인 것들이 삭제된다”고 지적했다. 제도정치를 강조하는 최 교수는 때때로 직접민주주의 형태로 드러나는 시민의 열망을 ‘포퓰리즘’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결국 제도정치를 바꿔낼 동력은 운동정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최 교수의 민주주의론에 담긴 ‘엘리트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하승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는 “최 교수의 주장엔 대중의 정치 참여에 대한 경계심이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 교수 이론의 바탕에 자연과 사회를 행정적으로 질서화해 통치하고자 하는 근대적 열망이 깔려 있다고 지적하고, “민주적 정치체계의 확립도 중요하지만,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를 구분하지 않고 사회의 정치적 잠재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인 최장집 교수를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자인 에티엔 발리바르와 비교하는 색다른 시도를 펼쳤다. 얼핏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민주주의를 역동적으로 파악해 ‘민주주의의 민주화’라는 담론을 제기하고 대의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

그러나 최 교수가 정당으로 포섭되거나 통합되는 것을 전제로 삼을 때에만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발리바르는 운동에 대해서도 본질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 제도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고 취약하기 때문에 소수 엘리트 지배로 흐를 여지가 많다. 그래서 ‘정당과 제도’뿐 아니라 ‘운동과 투쟁’도 함께 필요로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제기된 비판들은 최장집 교수의 ‘답변’과 함께 앞으로 책으로 엮여 출간될 계획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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