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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다문화주의, 제국주의 기반한 유럽틀 벗어야”

등록 2011-12-27 20:22

경기도 안산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 거리에 선 정병호 한양대 교수. 이곳은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다양한 이주노동자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대표적인 다문화 공간으로 꼽힌다. 정 교수는 이곳에서 이주민들, 활동가들과 소통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 안산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 거리에 선 정병호 한양대 교수. 이곳은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다양한 이주노동자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대표적인 다문화 공간으로 꼽힌다. 정 교수는 이곳에서 이주민들, 활동가들과 소통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다문화 다룬 책 낸 정병호 교수
유럽, 차이존중 속 동화정책
한국, 탈분단·탈근대와 연계
식민지 경험 ‘한민족 다문화’
공존·공생 가치로 만들어야
최근 1년 사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에서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는 선언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지난 7월 노르웨이에서 벌어졌던 테러는 다문화주의를 공격한 극단적인 인종주의 범죄였다.

애초부터 슬라보이 지제크나 알랭 바디우 같은 유럽의 사상가들은 다문화주의에 대해 ‘차이에 대한 존중’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동화와 배제’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공간적 통합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교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유럽 다문화주의의 실패가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자’는 극우파의 주장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26일 만난 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사진)는 이를 두고 “유럽의 다문화주의에 내재된 제국주의적 인식틀이 불러온 문제”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다문화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은 최근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책으로 묶은 ‘글로벌 다문화 총서’를 펴내기 시작했다. 그 첫 권은 한국의 다문화 공간들의 역사적 맥락과 현실을 짚은 <한국의 다문화 공간>(현암사 펴냄)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최근 몇 년 동안 다문화에 대한 사회 전반의 현실과 인식이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서 다문화 정책과 담론만 크게 늘어난 기형적인 단계에 와 있다고 정 교수는 진단했다. 그 결과는 이주민을 복지나 교육의 대상으로만 ‘대상화’하는 온정주의라고 한다. 또 그렇다 보니 유럽 다문화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 곧 차별과 배제, 동화주의 등도 그 속에 강하게 배어 있다고 봤다.

학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관 주도의 정책응용 연구는 넘쳐나지만 실질적으로 다문화 현실이 어떤지,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한겨레>가 최근 보도했던 조선족 디아스포라에 대한 기획연재를 언급하며, “정책적 필요성에 따라 유럽의 다문화주의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현실에 대해 실질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 성과물인 <한국의 다문화 공간>은 서울 용산·이태원, 인천 차이나타운, 안산의 ‘국경없는 마을’과 ‘고향마을’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다문화 공간들에 대해 그 역사적 기원과 현실을 담은 보고서다. 이 공간들을 꿰뚫는 역사적 맥락은 무엇보다도 제국주의 팽창과 그에 따른 식민지적 경험을 공유한다는 데 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용산 지역은, 그 뒤로 일본의 군사령부가 자리잡았고 해방 뒤에는 미군 주둔지가 됐다.

강제이주의 역사는 ‘조선족’ 재중동포, 사할린 한인 동포들의 귀환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분단과 전쟁, 냉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까지 더해진다. 북한이탈주민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은 다른 이주민들과 다르게 자신들의 문화적 성격을 대놓고 드러내지 못한다. 분단 상황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차별과 배제, 몰이해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의 의미는 ‘탈근대·탈분단’의 과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정 교수는 지적한다. 특히 그는 ‘한민족 다문화’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주민의 반수 이상과 귀화자 대다수는 근대 초기의 이른바 ‘코리아 디아스포라’의 주류 집단인 재중동포 등 한민족 출신의 재외동포 이주민이라는 것. 한국 사람들이 아류 제국주의적 입장에 서서 같은 식민지적 경험을 나눴던 동포 이주민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왜곡된 현실을 극복할 때,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 더 폭넓은 범위의 ‘다민족 다문화’도 가능할 수 있으리란 인식이다.

정 교수는 “때문에 담론에 앞서 다문화 공간의 역사적 맥락과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 제국주의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유럽 다문화주의와 다른 새로운 다문화주의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고 말했다.

곧 식민주의적 경험에 대한 천착으로부터 나온 다문화주의는 스스로를 문명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는 유럽 다문화주의와 달리 공존과 공생의 가치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 교수는 “이주민들은 ‘생존 전략가’”라고 말했다. 국민국가와 자본의 끊임없는 ‘경계 짓기’에 맞서 더 나은 삶을 궁리하고 선택하며, 그 가운데 타자와의 깊은 접촉을 가능하게 만드는 역동적 존재들이라는 것. 그는 “이들과 만나다 보면 국민국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현실에 뒤처져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총서의 다음 책에서는 이렇게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국 이주자 커뮤니티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을 계획이라 한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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