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최후의 날에 관한 12편의 에세이
조로아스터교에서 기원한 뒤
폭력·파괴라는 묵시적 예언에
새 세상 맞는 희망도 함께 담겨
오늘날엔 미래 없는 ‘끝’만 남아
폭력·파괴라는 묵시적 예언에
새 세상 맞는 희망도 함께 담겨
오늘날엔 미래 없는 ‘끝’만 남아
종말론-최후의 날에 관한 12편의 에세이
맬컴 불 엮음·이운경 옮김/문학과지성사·2만원 종말론은 그 예정된 끝이 찾아올 날짜를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반복된다. 1992년 한국에서는 ‘휴거’를 대비한다며 한 종교집단 교인들이 집단으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곧 찾아올 2012년에 대해서는 고대 마야문명이 예언했다는 ‘지구 멸망의 해’란 말이 돌기도 한다. 이처럼 무수히 많은 실패한 예언들 때문에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종말론은 인류의 내면에 있는 근원적인 무언가를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종말론-최후의 날에 관한 12편의 에세이>는 종말론을 고찰한 12편의 에세이들을 엮은 책이다. 읽기 쉬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겼으리라는 섣부른 기대와는 달리 종말론에 대해 고도의 지적인 탐구 결과물들이 들어 있다. 노먼 콘 서식스대 교수, 에드워드 사이드 컬럼비아대 교수 등이 필자로 참여하고 맬컴 불 옥스퍼드대 교수가 엮었으며, 1995년에 첫 출간됐다. 엮은이가 밝히듯 “(이 책은) 기독교 전통의 종교적 종말론과 그 뒤에 등장한 세속적 종말론 및 그에 대한 지적 탐구의 관계와 경계를 주된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곧 기독교가 확립한 서구의 종말론과 이와 관련된 역사인식의 다양한 양상들을 신학, 예술, 철학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분석했다는 것이 이 책의 취지다.
‘천년왕국’ 사상에 대해 깊이 연구해 온 노먼 콘은 고대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종말론이 처음 시작됐다고 봤다. 고대 사람들은 앞으로도 대체적으로 현재의 모습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정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원전 1400년에서 1000년 사이 원시 이란 부족에서 살았던 예언자 조로아스터는 선한 질서인 ‘아샤’를 수호하는 신인 아후라 마즈다와 거짓과 왜곡, 무질서의 원칙인 ‘드루지’를 지배하는 신인 앙그라 마이뉴가 대결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냈다. 이 싸움은 아샤의 승리로 끝날 것이며, 사악한 자들은 파멸하고 의로운 자들은 구제받는 등 세상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고 했다. 이런 믿음은 기존의 순환적 세계관에 ‘끝’을 부여했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 만들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이런 관념을 천년왕국과 최후의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 등으로 발전시켜 ‘종교적인 종말론’을 굳게 만들었다. 이는 서구의 역사인식 속에서 종말에 대한 관념이 내재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를 일곱개의 시기로 나눠 종말론의 정신적인 형식을 발전시켰으며, 실질적인 종말이 임박했다고 강조한 피오레의 요아킴은 시간에 대한 인식에 앞으로 나아간다는 ‘진보’의 관념을 더했다. 버나드 맥긴 시카고대 교수는 “‘최초의 유럽’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묵시적 믿음 때문에 창조됐다”고 지적했다.
각각의 에세이들은 종교적 종말론이 세속적 종말론으로 이어지는 과정, 문학과 철학에서 나타나는 묵시적 성격에 대한 연구, 베토벤과 아도르노에게서 나타나는 ‘말년성’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서구 종말론의 거대한 모습을 다면적으로 제시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크리샨 쿠마르 버지니아대 교수가 분석하는 오늘날 관찰되는 종말론의 양상이다. 종말론은 폭력과 파괴라는 묵시적 예언을 담고 있지만, 늘 천년왕국과 같은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함께 담아왔다. 곧 세상의 종말은 절망이 아니며, 새로운 세상이 태어난다는 희망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쿠마르는 새로운 2000년을 앞둔 세상을 보며 “희망적인 발전들에 관한 것처럼 보이는 견해들조차 이상하게 억눌려 있다”고 진단한다. 더이상 종말에 대한 전망이 유토피아적 희망을 고무시키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전과 달리 “미래의 느낌이 없는 천년기적 신앙”이라 한다.
후쿠야마 프랜시스는 ‘역사의 종말’을 통해 미국적 이념의 최종적인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개인주의, 자본주의, 소비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적 이념으로부터 유토피아적 희망을 고무시킬 수 있는 힘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환상이 없는 세상은 ‘타락한 천년왕국’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쿠마르는 유토피아의 필요성을 되새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토피아는 우리가 몽상하며 기뻐할 수 있도록 가능한 대안적 세계들을 발명하고 상상하는 일에 관여하고, 우리의 정신을 인간 조건의 가능성들에 대해 열어놓는다.”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끝난 두번째 천년기 뒤에 찾아온 세번째 천년기에, 다시 찾아올 종말에 대한 생각에는 꼭 이런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맬컴 불 엮음·이운경 옮김/문학과지성사·2만원 종말론은 그 예정된 끝이 찾아올 날짜를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반복된다. 1992년 한국에서는 ‘휴거’를 대비한다며 한 종교집단 교인들이 집단으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곧 찾아올 2012년에 대해서는 고대 마야문명이 예언했다는 ‘지구 멸망의 해’란 말이 돌기도 한다. 이처럼 무수히 많은 실패한 예언들 때문에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종말론은 인류의 내면에 있는 근원적인 무언가를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종말론-최후의 날에 관한 12편의 에세이>는 종말론을 고찰한 12편의 에세이들을 엮은 책이다. 읽기 쉬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겼으리라는 섣부른 기대와는 달리 종말론에 대해 고도의 지적인 탐구 결과물들이 들어 있다. 노먼 콘 서식스대 교수, 에드워드 사이드 컬럼비아대 교수 등이 필자로 참여하고 맬컴 불 옥스퍼드대 교수가 엮었으며, 1995년에 첫 출간됐다. 엮은이가 밝히듯 “(이 책은) 기독교 전통의 종교적 종말론과 그 뒤에 등장한 세속적 종말론 및 그에 대한 지적 탐구의 관계와 경계를 주된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곧 기독교가 확립한 서구의 종말론과 이와 관련된 역사인식의 다양한 양상들을 신학, 예술, 철학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분석했다는 것이 이 책의 취지다.
종말 위기의 암울한 미래를 그리는 영화 <노잉>의 한 장면. 종말론은 서양 철학과 사상에서 오랜 탐구 주제였다. 책 <종말론>은 서구 유명 지식인들이 종말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고 각 종말론에 담긴 의미를 분석한다.
후쿠야마 프랜시스는 ‘역사의 종말’을 통해 미국적 이념의 최종적인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개인주의, 자본주의, 소비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적 이념으로부터 유토피아적 희망을 고무시킬 수 있는 힘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환상이 없는 세상은 ‘타락한 천년왕국’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쿠마르는 유토피아의 필요성을 되새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토피아는 우리가 몽상하며 기뻐할 수 있도록 가능한 대안적 세계들을 발명하고 상상하는 일에 관여하고, 우리의 정신을 인간 조건의 가능성들에 대해 열어놓는다.”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끝난 두번째 천년기 뒤에 찾아온 세번째 천년기에, 다시 찾아올 종말에 대한 생각에는 꼭 이런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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