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동방견문록과 견줄 최부의 답사기
역사학자 눈으로 재해석한 여정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도 더듬어
역사학자 눈으로 재해석한 여정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도 더듬어
명대의 운하길을 걷다-항주에서 북경 2500㎞ 최부의 ‘표해록’ 답사기
서인범 지음/한길사·2만원 조선 성종 19년, ‘추쇄경차관’이었던 금남 최부는 군역을 회피하고 도망간 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제주도로 들어갔다가 급작스레 부친상을 당했다. 궂은 날씨에도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잿빛 바다에 배를 띄운 최부 일행은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게 됐고, 간신히 중국 절강성 태주부에 닿았다. 처음엔 왜구로 몰려 갖은 고초를 당했으나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져 명나라 장교의 보호를 받으며 북경까지 다다랐고, 다시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최부가 성종의 명에 따라 자신의 여정을 낱낱이 기록한 책이 바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히는 <표해록>이다. 1999년 학자로서 <표해록>과 처음 인연을 맺고 2004년에는 완역본을 펴내기도 했던 서인범 동국대 교수는 2009년, 그동안 생각만 했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최부가 밟았던 항주로부터 북경에 이르는 2500㎞ 여정을 따라가보는 것. <명대의 운하길을 걷다>는 그 여정 속에서 만난 최부의 자취, 한-중 간 교류의 역사문화를 담은 책이다. 배경도 과거 명나라가 아닌 현대 중국이 됐고 최부처럼 걷거나 배를 타지 않고 자전거·자동차·비행기·고속철 등으로 이동했지만, 보고 들은 것들을 공부하고 기록하는 지은이의 눈은 최부의 눈과 닮았다.
지은이는 무엇보다 항주에서 소주, 양주를 거쳐 북경까지 이어지는 최부의 여정이 명대에 재정비된 조운로를 따라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중국의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강북으로 옮기기 위해선 강들을 남북으로 잇는 인공적인 물길이 필요했고, 수나라 때 대운하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최부가 명나라를 여행했던 시기도 남북 교역이 중요해지던 때였다고 한다. 명나라의 수도는 원래 남경이었는데, 영락제가 조카 건문제와 내전을 벌여 승리를 거둔 뒤 자신의 세력 근거지인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며 조운로를 재정비했다는 것.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조운로에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취들이 깨알같이 박혀 있다. 최부는 배리 네 명을 시켜 틈틈이 그 지방에 대해 묻게 하고 기록하도록 시켰다.
대서법가인 왕희지가 모꼬지를 열었던 난정, 낙원처럼 즐거움이 가득한 항주,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소주 등 지역의 경승지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인심이나 관습, 문화에 대해서도 기록했다고 한다. 심지어 “강남 사람들은 모두 넓고 큰 검은색 속옷과 바지를 입었는데 비단·명주·필단으로 만든 것이 많았다. (…)강북에서는 짧고 좁은 흰옷 입기를 좋아했고, 가난해 해진 옷을 입은 자가 10에 3~4명은 되었다”고 적는 등 강남과 강북의 지역 차이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관찰을 남기기도 했다.
520여년의 세월을 두고 최부의 뒤를 따라나선 지은이로서는 훨씬 더 쓸 말이 많을 법하다. 최부의 첫 표류지점 등 그가 거친 발자취만 좇은 것이 아니라, 최부가 미처 보지 못한 중국의 모습들도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명나라 가정제 때부터 이어오고 있는 중국 최대의 서각인 ‘천일각’,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의 고향 소흥에 있는 그의 흔적, <서유기>의 지은이 오승은의 발자취 등이 그런 것들이다. 또 지은이는 최부처럼 중국에 자취를 남긴 선조들의 발자취도 함께 더듬었다. 고려 대각국사 의천의 상을 모신 항주의 고려사, 윤봉길의 의거 뒤 일제의 체포를 피해 김구 선생이 숨었던 가흥의 피난처, <격황소서>로 당나라에까지 문명을 떨친 최치원의 기념관 등이 대표적이다. 두서없이 등장하긴 하지만, 여행 도중에 만난 현대 중국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서술도 중국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좋은 정보가 된다.
지은이는 머리말에 정조 때 선비인 김정중의 말을 인용해 “생각컨대 문장이나 시는 모두 견문이 깊어져야만 밑천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부의 <표해록> 역시 견문을 충실히 담았기에 시대를 초월하는 저작으로서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역사학자가 직접 발로 뛴 탐방기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점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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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범 지음/한길사·2만원 조선 성종 19년, ‘추쇄경차관’이었던 금남 최부는 군역을 회피하고 도망간 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제주도로 들어갔다가 급작스레 부친상을 당했다. 궂은 날씨에도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잿빛 바다에 배를 띄운 최부 일행은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게 됐고, 간신히 중국 절강성 태주부에 닿았다. 처음엔 왜구로 몰려 갖은 고초를 당했으나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져 명나라 장교의 보호를 받으며 북경까지 다다랐고, 다시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최부가 성종의 명에 따라 자신의 여정을 낱낱이 기록한 책이 바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히는 <표해록>이다. 1999년 학자로서 <표해록>과 처음 인연을 맺고 2004년에는 완역본을 펴내기도 했던 서인범 동국대 교수는 2009년, 그동안 생각만 했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최부가 밟았던 항주로부터 북경에 이르는 2500㎞ 여정을 따라가보는 것. <명대의 운하길을 걷다>는 그 여정 속에서 만난 최부의 자취, 한-중 간 교류의 역사문화를 담은 책이다. 배경도 과거 명나라가 아닌 현대 중국이 됐고 최부처럼 걷거나 배를 타지 않고 자전거·자동차·비행기·고속철 등으로 이동했지만, 보고 들은 것들을 공부하고 기록하는 지은이의 눈은 최부의 눈과 닮았다.
서인범 동국대 교수가 최부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면서 만난 중국 영파 고려사신관 안에 걸려 있는 최부의 모습(왼쪽)과 중국 가흥 매만촌 물길 옆에 서 있는 옛 저택들. 김구 선생이 일제의 감시와 체포를 피해 이 근처에 피신했다고 한다. 한길사 제공
지은이는 머리말에 정조 때 선비인 김정중의 말을 인용해 “생각컨대 문장이나 시는 모두 견문이 깊어져야만 밑천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부의 <표해록> 역시 견문을 충실히 담았기에 시대를 초월하는 저작으로서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역사학자가 직접 발로 뛴 탐방기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점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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