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김현중씨를 함께 좋아하는 팬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사회적 기부 운동으로까지 확장시킨 것과 같은 팬덤 <한겨레> 자료사진
`아시아 문화경제·도시’ 학술회의
아이돌과 케이팝 열풍에 힘입어 ‘한류담론’은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을 비롯해 한류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기관, 문화산업 종사자, 대기업 연구소 등은 한류가 ‘생성-심화-다양화’의 발전단계를 밟고 있으며, 이에 따라 ‘포스트 한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류는 ‘전세계에서 형성된 한국 대중문화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현상’으로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장이며, 포스트 한류 시대는 ‘새롭게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인지’ 고민해야 할 단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10일 ‘아시아에서 문화경제와 문화도시’라는 제목으로 서울 중앙대에서 열린 한국문화연구학회의 국제학술회의에서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중국학·동아시아연구소 소장)는 주류 한류담론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아시아 문화도시’라는 관점에서 한류를 다시 사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치적 성격을 제거한 채 국가가 주도하는 수직적인 ‘문화경제’로만 논의되는 주류 한류담론에 맞서, 대중이 주체가 되어 이전에 없던 다원적인 관계망이 만들어지는 공간으로서 한류의 성격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문화연구학회에서 여는 첫 국제학술회의로, 아시아에서 대안적인 문화정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느냐를 따져보기 위해 마련됐다.
백 교수는 주류 한류담론의 문제점을 다섯가지로 들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주체로 삼고 아시아를 끊임없이 대상화해온 것 △국민문화를 동질적으로 가정해 모든 사회문화적 자원을 상품으로 삼아온 것 △배제와 착취 논리를 적용해 대중문화 생산을 서열화하고 권력화시킨 것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개발독재 모델과 다름 없는 수출 위주의 성장전략, 그리고 이런 주류 담론의 지배구도에 따라 △한류의 파장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박탈한 것 등이다. 그는 한류에 대해 “경제적 측면에서의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문화적 버전”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결국 주변부 자본주의의 압축적 근대화 모델이 문화적으로 가시화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가 주도의 진흥형 문화산업 시스템, 생계형 아이돌의 양성과 같은 훈육 구조, 문화산업 전반에 관철되고 있는 수출주도형 발전전략과 노동착취 구조 등은 그 적나라한 흔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와 자본이 앞장서서 만든 공간일지라도 탈경계적인 대중문화의 교통 속에는 그에 따라가지만은 않는 “문화적 역전의 연쇄현상”이 일어난다고 백 교수는 지적한다. 곧 탈정치화·탈혁명화 시대에 문화적 실천을 통해 정치를 다시 가동할 수 있는 장소를 ‘문화도시’라고 한다면, 아시아를 흐르는 탈경계적인 대중문화로부터 문화도시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그는 주류 담론을 단순 비판하는 것을 넘어 한류의 흐름을 아예 다시 구성해보는 시도를 펼쳤다.
백원담 교수, 한류 담론 비판
권력화·경제적 착취 등 지적
팬덤 주체화·상호작용 주목
“문화적 실천 통해 정치 가동”
예컨대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를 맞아 한국 사회단체들이 현장에 찾아가 원정 반대 투쟁을 벌였는데, 백 교수는 이를 “한류와 정치의 만남”이라고 보고 한류와 포스트 한류를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는 것, 곧 ‘재맥락화’할 수 있는 기점으로 평가했다. 당시 한국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원정단은 각종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냈고, 한국의 영화배우들은 당시 홍콩경찰에 구속된 농민들의 석방을 위해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또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를 홍콩에 유치한 중국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행보가 공론화되기도 했다.
백 교수는 “동아시아 개발독재 모델의 문화적 버전들이 전면적으로 경쟁하는 가운데, 탈경계적 하위문화들이 여기에 대응해 자기주체성을 개진하는 국면이 시작됐다”며 이 지점으로부터 포스트 한류를 따져보자고 제안했다.
특히 연예인을 ‘개념 연예인’으로 만들거나 기획사에 무시 못할 압력을 행사하는 등 탈경계 대중문화의 중심적 경향인 팬덤 현상의 구체적인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고 백 교수는 주장했다.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대상으로서의 모습도 있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주체적인 모습도 갖고 있다는 것.
그는 “비대칭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만들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팝 아시아니즘’은 일방적 관철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이 속에 ‘문화경제’를 넘어 ‘문화정치’가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녹아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나온 다른 발표들 역시 아시아에서 문화가 정치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 곧 문화도시의 가능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따져봤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기획금융이 만들어낸 도시경관의 문화정치적 함의를 따져보고,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는 글로벌과 로컬이 겹쳐 있는 도시 공간 속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불안정노동자 등 21세기 노동계급)라는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는 문제를 다뤘다. 왕샤오밍 상하이대 교수는 여태껏 중국의 주된 도시개발 모델이었던 ‘푸둥 모델’의 뒤를 잇는 ‘충칭 모델’의 내용과 문제점 등을 짚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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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 아이돌 공연 현장에서 열광하는 미국 팬들 <한겨레> 자료사진
권력화·경제적 착취 등 지적
팬덤 주체화·상호작용 주목
“문화적 실천 통해 정치 가동”
예컨대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를 맞아 한국 사회단체들이 현장에 찾아가 원정 반대 투쟁을 벌였는데, 백 교수는 이를 “한류와 정치의 만남”이라고 보고 한류와 포스트 한류를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는 것, 곧 ‘재맥락화’할 수 있는 기점으로 평가했다. 당시 한국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원정단은 각종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냈고, 한국의 영화배우들은 당시 홍콩경찰에 구속된 농민들의 석방을 위해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또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를 홍콩에 유치한 중국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행보가 공론화되기도 했다.
2005년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비판하며 원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사회단체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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