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동교동에 있는 그린비출판사에서 ‘푸코 심포지엄’을 기획한 주역인 김현경 그린비출판사 편집주간(왼쪽부터), 심세광 성균관대 교수, 진태원 고려대 인문한국(HK) 연구교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학교나 학회가 아닌, 출판사와 학자들이 함께 기획하는 이 독특한 성격의 심포지엄은 앞으로 해마다 열릴 계획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오늘부터 ‘미셸 푸코 심포지엄’
평전 재출간 등 재조명 활발
출판사·학자 손잡고 학술행사 만약 신자유주의가 하나의 ‘경제 독트린’에 불과한 것이라면, 제도와 정책으로 신자유주의를 바로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잦은 전지구적 금융위기 등 흔들리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해 ‘신자유주의의 실패’라고 규정짓고, 그동안 경제에 억눌렸던 정치·사회가 부활해 경제를 통제해야 한다는 식의 복지 담론 등이 그런 입장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양식 자체가 신자유주의에 붙들려 있다면 어떨까? 정치나 사회, 경제, 지식 등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한 덩어리로서 우리를 다스리고 있다면? 이런 물음과 연결지어 다시 관심을 모으는 철학자가 미셸 푸코(1926~1984·사진)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 유행을 타고 한국에 활발하게 수입됐던 푸코는 이후 잊혀지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부상하고 있다. 푸코를 다룬 가장 충실한 평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 펴냄)가 최근 18년 만에 재출간된 것도 그 단적인 사례다. 책 출간과 함께 푸코 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푸코 심포지엄’도 22~23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서 열린다. 심포지엄을 주도한 진태원 고려대 인문한국(HK) 연구교수, 심세광 성균관대 교수, 그린비출판사의 김현경 주간을 16일 서울 동교동 그린비출판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오늘날 본격적으로 되짚어봐야 할 푸코 사상의 핵심 키워드로 ‘통치성’과 ‘주체화’를 꼽았다. 심 교수는 “푸코는 통치와 지배는 거시적으로 행사되는 권력이 아니라 삶의 방식·양식·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봤다”며 “이에 따르면 문제는 정치권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에서 일상화된 품행 방식을 바꾸는 것, 곧 ‘대항품행’(counter conduct)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치성과 주체화의 문제는 그의 저작들보다도 1970년대 후반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한 내용들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는 20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한국에서도 <비정상인들><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안전·영토·인구>등의 강의록들이 번역 출간된 상태다.
심세광 교수
“관건은 정치권력 교체보다
획일화된 삶의 방식 바꾸기” 진 교수는 “90년대 푸코 수용은 ‘담론과 권력’을 중심으로 이뤄졌을 뿐 강의록에서 드러난 통치성과 주체화의 문제는 논의되지 못했다”며 “신자유주의 통치가 한계에 부딪힌 오늘날 푸코를 다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푸코는 법과 질서 등 외부적인 규제를 통해 통치가 이뤄지던 16~17세기와 달리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통치 테크놀로지, 곧 ‘자유주의 통치성’이 형성된다고 봤다. 자유주의 통치성은 주민 전체(인구)를 대상으로 삼아 건강, 안전, 복지 등을 보장받으려는 개인·집단의 자유로운 행동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여기엔 행정기구(안전장치)와 획일화된 ‘경제적 인간’을 만들어내는 지식 체계(정치경제학)가 핵심 구실을 한다는 것. 더 나아가 푸코는 대처와 레이건이 출현하기도 전인 그때에 이미 신자유주의를 분석했다고 한다.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질서자유주의’와 미국 시카고 학파의 정치경제학을 신자유주의라 보고, 자유주의가 ‘교환’을 중심으로 삼는 반면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진태원 교수
“푸코의 인식틀 도구 삼아
신자유주의 통치 풀어야” 이에 대해 진 교수는 “‘국가가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본질을 꿰뚫어봤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결국 신자유주의는 경제 독트린이 아니라, 인구의 수만큼 존재해야 할 삶의 양식을 ‘경제적 인간’ 하나로 획일화한 통치 테크놀로지”라며 “이런 푸코의 인식틀을 도구로 삼아 오늘날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를 근본적으로 한계짓는 신자유주의 통치 테크놀로지 속에서 다른 삶의 양식을 창조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심포지엄을 함께 주도한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역시 발표문에서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와 푸코의 사유를 비교하며 이런 물음을 던진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해 ‘알튀세르 심포지엄’에 이어, 학회나 연구소 소속이 아닌 학자들이 자유롭게 모여 출판사와 함께 만들어내는 학술 행사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에는 청중이 200여명이나 몰렸다고 한다. 두 차례 심포지엄을 기획한 진 교수는 “학문 체계의 벽, 대학 제도의 벽, 지식인과 대중의 벽 등을 허물어보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김현경 그린비 주간은 “학술적인 내용을 가지고도 대중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특히 출판사의 구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심포지엄은 해마다 열릴 계획이다. 내년에는 ‘마르크스’를, 그 다음해에는 ‘정상성’을 심포지엄 주제로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02)702-2717.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김진표·최인기·강봉균 떨고 있다
■ ‘오류 통계’로 무역협 “한국 세계 8위” 발표할 뻔
■ 대만계 MBA 스타 린한테 ‘찢어진 눈’
■ 정부, 비판적 전문가는 빼고 4대강 특별점검
■ 한약·기체조도 중국에 사용료 지불?
출판사·학자 손잡고 학술행사 만약 신자유주의가 하나의 ‘경제 독트린’에 불과한 것이라면, 제도와 정책으로 신자유주의를 바로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잦은 전지구적 금융위기 등 흔들리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해 ‘신자유주의의 실패’라고 규정짓고, 그동안 경제에 억눌렸던 정치·사회가 부활해 경제를 통제해야 한다는 식의 복지 담론 등이 그런 입장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양식 자체가 신자유주의에 붙들려 있다면 어떨까? 정치나 사회, 경제, 지식 등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한 덩어리로서 우리를 다스리고 있다면? 이런 물음과 연결지어 다시 관심을 모으는 철학자가 미셸 푸코(1926~1984·사진)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 유행을 타고 한국에 활발하게 수입됐던 푸코는 이후 잊혀지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부상하고 있다. 푸코를 다룬 가장 충실한 평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 펴냄)가 최근 18년 만에 재출간된 것도 그 단적인 사례다. 책 출간과 함께 푸코 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푸코 심포지엄’도 22~23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서 열린다. 심포지엄을 주도한 진태원 고려대 인문한국(HK) 연구교수, 심세광 성균관대 교수, 그린비출판사의 김현경 주간을 16일 서울 동교동 그린비출판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오늘날 본격적으로 되짚어봐야 할 푸코 사상의 핵심 키워드로 ‘통치성’과 ‘주체화’를 꼽았다. 심 교수는 “푸코는 통치와 지배는 거시적으로 행사되는 권력이 아니라 삶의 방식·양식·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봤다”며 “이에 따르면 문제는 정치권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에서 일상화된 품행 방식을 바꾸는 것, 곧 ‘대항품행’(counter conduct)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치성과 주체화의 문제는 그의 저작들보다도 1970년대 후반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한 내용들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는 20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한국에서도 <비정상인들><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안전·영토·인구>등의 강의록들이 번역 출간된 상태다.
“관건은 정치권력 교체보다
획일화된 삶의 방식 바꾸기” 진 교수는 “90년대 푸코 수용은 ‘담론과 권력’을 중심으로 이뤄졌을 뿐 강의록에서 드러난 통치성과 주체화의 문제는 논의되지 못했다”며 “신자유주의 통치가 한계에 부딪힌 오늘날 푸코를 다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푸코는 법과 질서 등 외부적인 규제를 통해 통치가 이뤄지던 16~17세기와 달리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통치 테크놀로지, 곧 ‘자유주의 통치성’이 형성된다고 봤다. 자유주의 통치성은 주민 전체(인구)를 대상으로 삼아 건강, 안전, 복지 등을 보장받으려는 개인·집단의 자유로운 행동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여기엔 행정기구(안전장치)와 획일화된 ‘경제적 인간’을 만들어내는 지식 체계(정치경제학)가 핵심 구실을 한다는 것. 더 나아가 푸코는 대처와 레이건이 출현하기도 전인 그때에 이미 신자유주의를 분석했다고 한다.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질서자유주의’와 미국 시카고 학파의 정치경제학을 신자유주의라 보고, 자유주의가 ‘교환’을 중심으로 삼는 반면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진태원 교수
“푸코의 인식틀 도구 삼아
신자유주의 통치 풀어야” 이에 대해 진 교수는 “‘국가가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본질을 꿰뚫어봤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결국 신자유주의는 경제 독트린이 아니라, 인구의 수만큼 존재해야 할 삶의 양식을 ‘경제적 인간’ 하나로 획일화한 통치 테크놀로지”라며 “이런 푸코의 인식틀을 도구로 삼아 오늘날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를 근본적으로 한계짓는 신자유주의 통치 테크놀로지 속에서 다른 삶의 양식을 창조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심포지엄을 함께 주도한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역시 발표문에서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와 푸코의 사유를 비교하며 이런 물음을 던진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해 ‘알튀세르 심포지엄’에 이어, 학회나 연구소 소속이 아닌 학자들이 자유롭게 모여 출판사와 함께 만들어내는 학술 행사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에는 청중이 200여명이나 몰렸다고 한다. 두 차례 심포지엄을 기획한 진 교수는 “학문 체계의 벽, 대학 제도의 벽, 지식인과 대중의 벽 등을 허물어보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김현경 그린비 주간은 “학술적인 내용을 가지고도 대중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특히 출판사의 구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심포지엄은 해마다 열릴 계획이다. 내년에는 ‘마르크스’를, 그 다음해에는 ‘정상성’을 심포지엄 주제로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02)702-2717.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김진표·최인기·강봉균 떨고 있다
■ ‘오류 통계’로 무역협 “한국 세계 8위” 발표할 뻔
■ 대만계 MBA 스타 린한테 ‘찢어진 눈’
■ 정부, 비판적 전문가는 빼고 4대강 특별점검
■ 한약·기체조도 중국에 사용료 지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