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원재 지음/어크로스·1만8500원
탐욕 부추기는 구조, 위기 불러
생생한 사례 들어 탈출구 제시
생생한 사례 들어 탈출구 제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원재 지음/어크로스·1만8500원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
자칭 ‘경제 전문가’들이 자주 내뱉는 말이다. 이 말은 그들만의 성벽을 쌓기 위한 꼼수다. 경제 영역에 대해선 윤리적 잣대나 사회적 가치의 적용을 거부한다. 문제는 이런 배타적 논리가 성벽 바깥의 사람들까지 오염시킨다는 데 있다.
탐욕스러운 1%가 소외된 99%까지 탐욕에 빠져들게 하는, 그래서 더욱 큰 고통과 좌절로 내모는 논리는 간단하다. 성벽 안의 세상에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만 존재한다. 이기심을 부추겨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면 결국 전체 사회 구성원한테 유익한 성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까지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다.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의 뿌리다. 그러나 이 뿌리가 지금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전세계 경제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럴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이 오래된 경제 패러다임의 붕괴 원인을 밝히고 극복 방안을 모색하는 책을 냈다. 복잡한 수학 공식 따위를 모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책을 썼다. 국내외 경제 현상과 기업 경영의 생생한 사례들로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경제논리’를 파헤친다. 우선 지은이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상식의 눈높이로 진단한다.
“탐욕이 선이 아니라, 선의가 선이다. 냉혈한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착한 사람이 성공한다. 말과 행동, 겉과 속이 다른 것은 나쁜 것이다. 언행일치가 미덕이다. 경제라고 다를 것은 없다.”
곧 인간의 이타심과 호혜주의에 입각한 경제가 더 상식적이라는 얘기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경찰 출동 안 하는데도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이웃의 처지를 늘 배려하며, 심지어 천리 만리 떨어진 세상의 고통에도 슬퍼하는 인간이 더 많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이 말한 ‘합리적 바보’들이다. 이원재 소장도 바로 이런 바보들의 행진을 부추기는 연구자이다.
지은이는 지금의 위기를 단지 금융적 현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달러 기축체제에 기댄 미국의 과소비, 이를 지탱하는 자산 거품과 중국 등 무역흑자국들의 과잉생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 등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적 위기국면으로 진단한다. 그래서 세계인의 삶의 방식, 기업경영 방식, 시장질서 전반을 바꾸지 않고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지은이는 저탄소 경제와 탈성장 사회를 탈출구로 제시한다. 착한 소비,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서 희망을 찾는다.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싹트고 있는 대안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추천사에서 “이 책이 다루는 희망 담론이 아직은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인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빨리 너무나 평범한 경제학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언했다.
탐욕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중시해온 세계 경제는 지금 벼랑 끝에 몰렸다.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오던 이들의 신념이 무너지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우리가 살고 싶고,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나만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화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답을 찾는 여정에 동참하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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