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화원> 이병승 글, 원유미 그림/북멘토·1만1000원
[토요판]
여우의 화원
여우의 화원
아이들에게 ‘정리해고’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 “너는 어리니까 몰라도 돼”라고 말하긴 쉽다. 그러나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농성장에서 아이들이 ‘용역반원’과 ‘노동자’로 패를 갈라 잡으러 뛰어다니는 ‘용역놀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단지 아이들의 눈과 귀를 막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 소설인 <여우의 화원>은 복잡한 어른들의 일인 듯 보이는 정리해고 문제를 본격적으로 어린이들의 세계로 끌고 들어온 책이다. 지은이인 이병승씨는 “해고 노동자 가족의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용역놀이를 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마음이 무척 아팠고, 그래서 이 동화를 쓰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전형적이지만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만한 이야기 형식을 빌려 정리해고가 어떤 것인지 풀어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민수는 벽암시에서 가장 큰 공장을 가진 미래자동차 사장의 아들이다. 기업을 물려받으려면 강하게 커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렸을 때부터 중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민수는 어릴 때 살던 벽암시로 다시 돌아왔다. 어릴 때 가장 친한 친구였던 억삼이를 다시 만나지만, 억삼이를 비롯한 학교 친구들은 ‘용역놀이’를 하며 민수를 괴롭힌다. 알고 보니 친구들의 부모는 대부분 미래자동차에서 노동자로 일해 왔는데, 회사가 정리해고를 단행하며 일자리를 잃게 된 것. 이때부터 민수에게 정리해고는 끝없는 고민을 하게 하는 절박한 문제가 된다.
부모가 해고된 친구들 본 뒤
사장 아들 ‘문제의 연극’ 펼쳐
“아빠, 사과부터 하세요” 아버지는 “멋진 잔디밭을 가꾸려면 잡초는 뽑아낼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철학을 강조하고 억삼이 아버지 등은 “공장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을 갑자기 뽑아내 말라죽게 하는 건 사람이 사람한테 지켜야 할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냉정하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할 리 없다고 믿는 민수는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 보려 친구들과 함께 연극 무대를 준비한다. 그러나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던 날 아버지는 공권력을 투입해 해고 노동자들을 해산시키려 하고, 다급해진 아이들은 양쪽이 대치한 한가운데에서 자신들이 준비한 연극을 펼친다.
민수와 억삼이가 준비한 연극의 내용은 어린이들이 정리해고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잘 보여준다. 여우는 온갖 나무를 불러와 아름다운 화원을 꾸미지만, 별다른 관리가 필요치 않은 들꽃들이 만발해지자 나무들을 베어 버린다. 그러나 겨울이 되자 들꽃들은 모두 말라죽고 그제야 후회막급한 여우는 베어 버린 나무들을 다시 찾는다. 잘못을 뉘우친 여우는 다시 나무를 심고 정성을 쏟아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화원을 만들게 된다.
민수와 억삼이가 만들어낸 이 동화는 과연 현실로 이뤄질 수 있을까? 자기 철학을 냉정하게 강요하고 관철시키는 아버지에게 반발하고 이런 동화를 만들고 공연까지 한 민수는 과연 아들로서 ‘재계약’이 가능할까? 이 모든 잔혹하고 냉정한 현실을 보고 들은 민수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자기 주장을 말한다. “저는 아빠 때문에 힘들어진 사람들한테 아빠가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무가 아니었으면 여우의 화원은 만들어질 수 없었고, 둘이 서로를 보살피고 위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었다. 이처럼 “소중한 건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삼아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해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그림 북멘토 제공
사장 아들 ‘문제의 연극’ 펼쳐
“아빠, 사과부터 하세요” 아버지는 “멋진 잔디밭을 가꾸려면 잡초는 뽑아낼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철학을 강조하고 억삼이 아버지 등은 “공장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을 갑자기 뽑아내 말라죽게 하는 건 사람이 사람한테 지켜야 할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냉정하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할 리 없다고 믿는 민수는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 보려 친구들과 함께 연극 무대를 준비한다. 그러나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던 날 아버지는 공권력을 투입해 해고 노동자들을 해산시키려 하고, 다급해진 아이들은 양쪽이 대치한 한가운데에서 자신들이 준비한 연극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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