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과 한국을 오가는 조선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황해>(왼쪽)와 두만강변을 배경으로 북한이탈주민과 조선족의 힘겨운 현실을 담은 영화 <두만강>. 김성경 성공회대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북한 주민의 이주에는 정치적·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동일 문화·언어를 바탕으로 한 ‘민족문화 공간’이란 요인이 있다고 풀이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 `이동의 아시아’ 포럼
김성경 교수, 문화요인 짚어
탈북자들 중국체류 선호는
경계지역 공동 문화 때문
“남한 이주, 냉전이념이 방해” <의형제> <황해> <두만강> <무산일기> 등 몇 년 전부터 한국 영화에 재중동포(조선족)와 북한이탈주민들이 부쩍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동포’라는 형식적인 혈통관계를 넘어, ‘경계 위에 선 사람들’로서 이들을 조명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북한과 중국의 경계지역을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민족문화 공간’이라고 보고, 북한 주민의 이주에는 그동안 지적되어 온 정치적·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이 문화적 요인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21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가 연 ‘이동의 아시아’라는 제목의 국제학술대회에서 김성경 성공회대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경험되는 경계지역과 이동경로-북한 이탈주민의 경계 넘기 혹은 경계 만들기’라는 발표를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 김 연구교수는 “북한 주민의 이주의 성격과 원인을 정치적 혹은 경제적 요인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고 짚었다. 그가 짚은 의문점은,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이후 시작된 북한 주민의 탈북 이동은 30만명에서 100만명까지 추정되는데, 이들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한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기보다는 중국에 체류하거나 북한으로 자발적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는 점, 이주민 대부분이 함경북도 출신이라는 점,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70% 가까이가 여성이라는 점 등이다. 정치적·경제적 요인 대신 그는 문화적 요인, 곧 북한과 중국의 경계지역이라는 공간에 문화적·언어적으로 동일한 커뮤니티가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북한 주민의 ‘경계 넘기’는 타국으로의 이주(migration)이기 전에 일상생활 깊게 작동해온 커뮤니티 내의 이동(mobility)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통일부 자료를 보면 2008년까지 북한 이탈주민 가운데 68%가 중국과 접경지역인 함경북도 출신인 반면, 또다른 접경지역인 양강도 출신과 자강도 출신은 각각 5%와 1%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함경북도의 경우 국경 너머에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일상에서 작동하는 문화적·언어적 커뮤니티가 있는 반면, 양강도나 자강도에는 백두산의 험한 산세와 군사시설의 집중 등으로 그런 커뮤니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고 김 연구교수는 분석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들과의 심층 인터뷰에서도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홧김에 두만강을 넘는 등 국경으로 구분되는 경계지역이 아닌, 동일문화·언어지대로서의 함경북도 지역·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경 경비와 월경 처벌이 강화되면서 동일문화·언어지대로서의 공동체적 문화가 변화했고 북한 주민의 월경은 국가를 등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여전히 조선족 사회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동일문화·언어지대를 재구성하는 현상도 관찰된다고 김 연구교수는 밝혔다. 연변에서 북한이탈주민 여성들이 남한으로 경제이주를 떠난 조선족 여성의 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 등이 대표적 현상이라 한다. 김 연구교수는 약화된 국경을 찾아 떠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경계문화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 삶의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 안에서의 이동 과정을 보면, 조선족 교회 또는 한인 교회 등이 “초국적 민족적 공간이자 경계문화의 장”으로 큰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곧 지리적으로 구획된 경계지역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과 북한인, 조선족이 서로 경합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초국적 민족 공간을 만들어내는 등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초국적 민족 공간을 경험한 북한이탈주민의 ‘경계문화에 대한 경험’이 남한 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지 “적대국인 북한에서 왔다”, “극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경험이다” 등으로만 인식하여, 그들이 새로운 이주 문화와 공간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배경에는 아직까지 남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한다. 김 연구교수는 무엇보다 ‘북한 출신’이라는 단순한 인식을 넘어, 북한이탈주민의 초국적 경험과 이들의 이동 과정을 관통하는 문화지리학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탈북자들 중국체류 선호는
경계지역 공동 문화 때문
“남한 이주, 냉전이념이 방해” <의형제> <황해> <두만강> <무산일기> 등 몇 년 전부터 한국 영화에 재중동포(조선족)와 북한이탈주민들이 부쩍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동포’라는 형식적인 혈통관계를 넘어, ‘경계 위에 선 사람들’로서 이들을 조명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북한과 중국의 경계지역을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민족문화 공간’이라고 보고, 북한 주민의 이주에는 그동안 지적되어 온 정치적·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이 문화적 요인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21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가 연 ‘이동의 아시아’라는 제목의 국제학술대회에서 김성경 성공회대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경험되는 경계지역과 이동경로-북한 이탈주민의 경계 넘기 혹은 경계 만들기’라는 발표를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 김 연구교수는 “북한 주민의 이주의 성격과 원인을 정치적 혹은 경제적 요인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고 짚었다. 그가 짚은 의문점은,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이후 시작된 북한 주민의 탈북 이동은 30만명에서 100만명까지 추정되는데, 이들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한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기보다는 중국에 체류하거나 북한으로 자발적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는 점, 이주민 대부분이 함경북도 출신이라는 점,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70% 가까이가 여성이라는 점 등이다. 정치적·경제적 요인 대신 그는 문화적 요인, 곧 북한과 중국의 경계지역이라는 공간에 문화적·언어적으로 동일한 커뮤니티가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북한 주민의 ‘경계 넘기’는 타국으로의 이주(migration)이기 전에 일상생활 깊게 작동해온 커뮤니티 내의 이동(mobility)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통일부 자료를 보면 2008년까지 북한 이탈주민 가운데 68%가 중국과 접경지역인 함경북도 출신인 반면, 또다른 접경지역인 양강도 출신과 자강도 출신은 각각 5%와 1%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함경북도의 경우 국경 너머에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일상에서 작동하는 문화적·언어적 커뮤니티가 있는 반면, 양강도나 자강도에는 백두산의 험한 산세와 군사시설의 집중 등으로 그런 커뮤니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고 김 연구교수는 분석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들과의 심층 인터뷰에서도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홧김에 두만강을 넘는 등 국경으로 구분되는 경계지역이 아닌, 동일문화·언어지대로서의 함경북도 지역·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경 경비와 월경 처벌이 강화되면서 동일문화·언어지대로서의 공동체적 문화가 변화했고 북한 주민의 월경은 국가를 등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여전히 조선족 사회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동일문화·언어지대를 재구성하는 현상도 관찰된다고 김 연구교수는 밝혔다. 연변에서 북한이탈주민 여성들이 남한으로 경제이주를 떠난 조선족 여성의 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 등이 대표적 현상이라 한다. 김 연구교수는 약화된 국경을 찾아 떠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경계문화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 삶의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 안에서의 이동 과정을 보면, 조선족 교회 또는 한인 교회 등이 “초국적 민족적 공간이자 경계문화의 장”으로 큰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곧 지리적으로 구획된 경계지역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과 북한인, 조선족이 서로 경합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초국적 민족 공간을 만들어내는 등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초국적 민족 공간을 경험한 북한이탈주민의 ‘경계문화에 대한 경험’이 남한 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지 “적대국인 북한에서 왔다”, “극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경험이다” 등으로만 인식하여, 그들이 새로운 이주 문화와 공간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배경에는 아직까지 남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한다. 김 연구교수는 무엇보다 ‘북한 출신’이라는 단순한 인식을 넘어, 북한이탈주민의 초국적 경험과 이들의 이동 과정을 관통하는 문화지리학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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